연대기的 산책 몸의 왼쪽엔 슬픔이라는 유역이 있다 그곳은 한 세상으로부터 온 길이 끝나고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길이 시작 된다 게딱지같이 빳빳한 가슴팍이 녹아내리는 날이 생겨나고 숲의 입김이 새에 실려 날아가는 곳 (2012년 7월 27일) 1 거울이 거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나는 미끄러지는 거울에 착 달라붙어 거울 속으로 같이 들어갔다 한 사람이 자신은 한 장의 종이라고 했다 그러나 안을 수조차 없이 얇은 사람은 여럿의 그림자를 갖고 있어서 그의 세상은 모든 그림자가 유효했다 2 미끄러져 들어간 세상은 수레국화가 지천인 산언저리 비탈밭이었고 그곳에는 난장이들이 재주를 넘고 있었다 마지막 난장이가 내 앞으로 와서 재주를 넘을 때 세상은 일식에서 깨어나고 나비 하나가 하얀 선으로 날아올랐다 3 서늘한..
빛이 남긴 감정, 에이피 사진전 -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세종문화회관 전시실12월 29일~ 3월 3일 까지) 중 북한 사진 중에서 산책 거울이 거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나는 그 거울에 착 달라붙어 거울 속으로같이 들어갔다길 하나가 같은 곳으로 향하는 두 길로 나뉘고 있다 1 당신은 스스로가 종이처럼 얇다고 했다안을 수조차 없이 얇은 당신은여럿의 그림자를 갖고 있어서당신의 세상은 모든 그림자가 유효했다내가 당신에게 포갠 채 한 세상 안으로 미끄러져 들었을 때 수레국화가 지천인 산언저리 비탈이었다그곳에는 난장이들이 재주를 넘고 있었다마지막 난장이가 내 앞으로 와서 재주를 넘을 때 세상은 일식에서 깨어나고 나비 하나가 하얀 선으로 날아올랐다 2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바람도 또 하나의 아픔이라 아픈 내 ..
천남성 -神託 그리고 警告 나비여 내 향기를 맡아보게 조금 있으면 내 어깨에 꽃이 서광할 테니 그대의 가녀린 입을 가만히 담가보게 산들바람에 고혹의 향기를 실어 그대를 부를 것이니 내 살갗에서 피어오르는 고요에 입맞추어보게 위험한 향기로 그대 속에서 꿈틀대는 신탁의 고통을 달콤하게 질식시킬 것이니 그때, 걸송桀宋*에게 잘린 내 정강이가 땅속으로 뿌리내려 천남성으로 환생하는, 내게 내린 신탁마저 실현될지니 지금 나는 유혹과 경고의 중간쯤에 잠시 섰네 *걸송; 송나라 왕 언(偃)(BC369~286년) (2010년) https://blog.naver.com/suzhou8283/222258353050 “걸송桀宋” 송宋 국군國君 척성剔成이 왕이 된 뒤 41년이 되었을 때, 그의 동생 언偃이 군대를 일으켜 그를 공..
자화상-개는 왜 풍경 속에 있을 수 없는가 친구가 입주해 있는 답십리 상가에서 내려오는 에스컬레이터에서 보이는 신발코너진열대 위의 구두 한 켤레를 터지려고 하는 나의 울음 속에 슬쩍 담갔다가 제자리에 놓아두고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한 장 떼어 가방 속에 집어넣고작업실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깨달은 것,머리한쪽이 움푹 꺼진 어미가 도사견 튀기였다는덩치 큰 개의 남은 눈 하나로 바라보았다는 것,작업실로 돌아와 답십리 풍경을 작업대 위에올려놓고 망치로 사정없이 내려친다산산조각 난 풍경 부스러기 속에서 새들이 푸드덕 날아오른다 (2000년)
수메루 신화 진안박물관 특별전시실엔 수메루가 솟고 금강륜이 펼쳐있다용담에서 떠난 이들의 마음을 그릇 안에 펼쳐 놓고 가장자리를작은 금강륜으로 감쌌는데, 미술 하는 소영권이 큰 금강륜의 벽에 지옥도를 그리고 있다박물관 학예사는 상구보리의 욕망을 거두고 이웃 박물관 학예사와 나를 불러 중생세간을 같이 꾸미자며 화해시키려 한다중생세간에 길을 내고 신화의 뒷면에 대한 다툼으로 맞이하는 새벽,날 밝으면 지나야 할 길 위에 고라니가 차에 받혀 처참하게 나뒹군다전시가 개막하면 관람객들은 재현한 세상을 보며 자신이 밟고 선 곳이지옥인 줄 알아볼까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할 걸 알면서도 수메루 세상을 꾸며놓고 오는 길,애통하게 번진 고라니의 핏물을 비가 오셔서 씻어주니 고라니가 털을 하얗게 바꾸며 일어나 숲으로 뛰어든다 (..
배반의 말 안개여 너는 온 몸으로 나를 감싸고 있어커다란 대추모양으로 하지만 난 너를 배반 한다나는 씨가 아니라 나무로 모양을 키우기 시작했거든 굵은 줄기에서 뻣뻣하게 가지를 뻗으며지난여름의 살기를 품은 억센 가시로 나를 안은 너의 가슴과 목덜미와 턱과 겨드랑이그리고 네 음부 근처 부드러운 허벅지까지,찔릴 때 고통보다 빼는 고통이 더하도록 힘껏 찌르고 있어가끔 너의 고통을 생각할 뿐, 나의 의도는 단 한 가지 네 살갗 속 신선한 생살과 박동하는 핏줄을 유린하고 붉은 피를 터뜨려살과 박힌 가시의 미세한 틈으로 흘러내리게 하는 것 나는 네 피에 젖으며 배어나오는 핏물과 신음처럼천천히 눈물만 흘릴 거야 온몸으로 감싸 나를 보호해 온 안개여나는 이렇게 너를 배반하고 있다 언젠가, 배반의 가시가 녹을 리 없고네 ..
네가 잠들었을 때 네가 옆으로 잠들었을 때 포화상태의 습기는 대지위에서 숨죽이고어린 소녀만이 너의 테두리를 그린다양파허물만큼이나 얇은 속마음이 네 육신을 움직이자너를 비추던 빛이 미열의 소리를 낸다여행 중에 만나는 윤회중인 마늘빵 한 봉지 세 부의 지방신문두루마리 화장지와 박물관 탁자는 자유롭다휴지는 나무의 영혼을 탈색하며 누군가의 손길을 기다리고 불길을 견딘 빵과 신문은 학예사의 가방으로 옮겨간다나는 너의 뒷모습이 보이는 한 낮 숲속으로 여정을 옮겨갖 잘린 머리털이 진물에 달라붙은 네 어깨를 가볍게 쓰다듬는데태초의 네 살갗은 너무나 얇아 내 손가락이 안쓰러운 구멍을 내었네네가 비스듬히 옆으로 잠들었을 때, (2011년)
시 시라는 꽃이 피었다벌과 나비가 날아들던 날 시는 단단해지는 걸 느끼며시들기 시작했다 시는 시듦에서 단단함으로 자신을 바꾸어 갔다단단함은 스스로를 뭉치며부풀고 시든 걸 떨어뜨리고자신을 달구어 갔다그렇게 안팎이 뜨거워지고서풍이 그 걸 멈추고자 찾아왔을 때그림자에 자신을 포개며대지에 떨어졌다대지는 차가웠으나 그림자와 하나가될 수 있었기에 안온했다시는 이제 스스로가 없어졌다자신의 그림자를 만들던 대지조차자신과 하나였음을 예감하기 때문에, 자신을 버린 시에게 벌레들이 찾아왔다새들도 찾아왔다자신을 버린 시의 살을 벌레가 베어 먹고새들은 남은 씨를 삼키고 바람이 자는 고목의 그루터기 속으로 갔다시는 없는데 시의 그림자는 씨가 되어 눈에 덮이고일부는 고치가 되었다 (2012년)
우물에 빠진 날 새우를 고르는 어부의 집 오사리 물고기들 틈에서 未熟의 검푸른 몸으로 갯장어 새끼가 눈도 뜨지 못한 채 입을 벌려대고 콩게들은 그늘을 향해 쏜살같이 달아나는 마당가 입술을 열지 않고 제 속에서 꽃을 피우는 무화과가 말랑해지며 가을 속으로 들고 있지만 남방에서 왔을 이구아나는 건너편이 겨울인 줄도 모르고 가을의 두렁에서 도랑으로 풍덩 뛰어든다 내가 허방에 발을 딛어 시간이 멎은 순간을 바라보며 친구들이 안도의 웃음을 초고추장 맛으로 느끼는 사이 젖은 옷을 한 겹 한 겹 벗고서 수돗물에 씻겨 내리는 오물들을 바라보며 금시조에 쪼인 왼쪽 어깨 언저리에서부터 몸이 연두로 물들어가는 걸 안다 유쾌하고 고요하게 묵은 우물에 빠진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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