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의 동쪽 그림자라 불리는 윈난성(雲南城)의 리장(麗江), 그곳은 소수민족 ‘라희’의 삶터다. 허나 날마다 봄날인 이곳이 그들의 평화로운 삶터로 되는 데는 나름대로 아픔이 있었다. 먼 옛날, 그러니까 아마도 그들이 이 땅에 정착할 무렵, 이곳에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있었다. 이른바 ‘검은 물’(黑水)에 기대어 살던 ‘검은 라히’와 ‘흰 물(白水)에 기대어 살던 ’흰 라히‘가 일으킨 ’흑백대전‘이 바로 그것이었다. 전쟁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주검이 쌓여 산을 이루고 피가 흘러 내를 이루었음에도 전쟁의 승패는 갈리지 않았다. 마침내 ‘검은 라히’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 전쟁의 결과 라히족은 저절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상황은 원(元)왕조 때 완성된 그들의 음악인 ‘펑스시리’(..
차를 마시는 일도 실용성에 바탕을 두어야 하겠지만, 그 실용성에는 마음의 실용성까지 포함될 것이니, 이 실용성의 바탕인 ‘사람다움’과 참선으로 드는 마음이 어디 다른 뿌리에서 왔다 할 것인가. 아무튼 필자는 차를 마심에 여섯 갈래 마음 길을 생각한다. 생각건데 차에는 무엇보다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다. 찻잎은 자신을 남김없이 풀어내어 차가 되었고, 차를 우려내는 맑은 샘물은 스스로의 깨끗함만을 고집하지 않고 찻잎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끝없는 나눔과 걸림 없는 받아들임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차를 마실 때, 사람도 마땅히 그런 마음을 키워야 할 터, 그것이 사랑의 마음(愛心)곧 차 마시는 이가 갖추어야 하는 마음바탕이 아닐 것인가. 더 나눌 것 없이 나누어도 더러움이 묻어나오지 않고 아무리 받아들여도 그..
중국의 어떤 대학에서 만난 한국 유학생들, 마침 그들은 제 나라의 음식문화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국 음식이요? 그냥 죽 늘어놓고 막 먹으면 되요.” 젊은 그들의 당연하고도 당황스런 대답이었다. 그럴 수가 있을까? 하늘 아래 아무렇게나 하면 되는 것은 드물다. ‘마음 가는대로 해도 참된 약속에 어긋나지 않는다’는 경지가 아니라면 말이다,. 모든 것에는 다 그 나름의 약속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의 음식문화는 공간예술을 중시한다. 중국의 음식문화가 음식을 내오는 과정, 곧 시간예술을 중시한다면, 한국의 음식문화는 음식을 배치하는 공간예술을 중시한다는 말이다. 예를 들어 간장을 북극성으로 삼고 수저를 북두칠성으로 삼으며 다른 음식들을 각각 그 성질에 따라 하늘의 별자리처럼 배치해 나가는 공간예술이..
수많은 민족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중국 윈난성, 각 민족들의 정신적 대동맥이라 할 그들의 신화도 그만큼 다양하다. 라후족(拉祜族)의 신화도 그 가운데 하나, 그 한 토막을 이야기할까 한다. 이것은 라후족의 주요한 조상신인 ‘아싸’와 관련된 신화, 아싸는 인간에게 자연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쳤다는 라후족의 신이면서, 이 가르침을 통해 자연에 얽힌 자신의 한을 풀어간 톡특한 신이기도 하다. 조롱박 덩굴이 끊어졌다네. 조롱박이 굴러 달아났다네. ……‘아싸’가 이를 좇아서 갈대숲에 갔다네. 갈대가 조롱박을 본적이 없다고 하네. 아싸는 화가 나서 말했다네. “사람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만 기다려라. 갈대를 베어 담을 엮게 할 테니.” 아싸는 조롱박을 찾아 금죽(金竹) 숲까지 좇아갔다네. 금죽(金竹)도 조롱박을 본적이..
用變不動本“쓰임새야 이리저리 바뀔지언정 그 뿌리는 움직이니 않나니”(用變不動本)이라는 말이 있다. 이론적으로 이 말을 이해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 어떤 이가 어제는 빨간 옷을 입고 오늘은 파란 옷을 입는다고 해서 그가 다른 사람이 아니듯이, 물들인 빛깔이야 다를지라도 또 그것이 같은 삼베옷일 수 있듯이 말이다. 차라고 해서 어찌 다를 것인가. 전라도 보성에서 난 찻잎과 경상도 하동에서 난 찻잎이 다를지라도 그것으로 만든 것이 어찌 근본에선 같은 차가 아닐 것이며, 봄에 난 차와 여름에 난 차도 그 뿌리를 따지자면 어찌 서로 다를 물건일 수 있겠는가. 어떤 이는 곡우 이전에 딴 찻잎을 소중하다 하고, 어떤 이는 입하 무렵의 찻잎이 그만이라 하지만, 뿌리를 살피자면 거기에 어찌 잘나고 못난 구별이 있을 것..
술을 마시면 취(醉)한다. 허나 “차도 사람을 취하게 한다” (茶亦醉人). 그렇다면 취한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 문학적 표현이라 생각하기 쉽겠으나, ‘풍경에 취하다’, ‘인품에 취하다’, ‘인정에 취하다’, ‘음악에 취하다’ 등 취한다는 표현을 쓰는 경우는 그리 적지 않다.설명이 복잡한 한자어를 놓아두고 우리말로 한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자. 우리말로 술에 취한 상태를 일러 ‘알큰하다’라고 말한다. 어찌 보면 ‘맵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도 있는 이 말은 그 뿌리에서 옛 만주어와도 통하는데, 그것은 ‘아리키’(술을 가리키는 옛 만주어)를 마신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법이란 본래 형체가 없는 것, 두루 통하는 것을 귀하게 여길 뿐”(法本無體 貴乎會通) 이에 견주어 인정에 취하고 음악에 취하는..
한때 그 땅의 넓이와 나라의 힘이 대륙의 당나라와 견주어 모자람이 없었던 ‘대리(大理), 실질적으로 이 나라를 이끌었던 종족은 바이족(白族)이었다. 그들은 오늘날 현대화라는 거센 물결에도 굽히지 않고 스스로의 문화를 바탕으로 삶을 이끌어나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독특한 차문화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삼도차(三道茶), 삼도차는 토팔완(土八碗)과 더불어 손님을 맞이하는 바이족의 전통이기도 하다. 여덟 접시에 팔괘를 상징하는 음식들을 담아 손님대접을 하는 것이 토팔완이라면, 세 가지 차를 차례대로 내어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삼도차다.이 가운데 토팔완은 대리의 땅을 함께 향유하자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삼도차는 대리 사람의 인생역정을 함께 나누자는 뜻을 담고 있다. 즉 토팔완은 대리 사람의 공간이요 삼도차는 대리..
사람이 그 나름대로 창조자가 된 것은 불을 쓰면서부터였으리라. 그 이전에는 사람의 삶도 크게는 다른 영장류들과 다르지 않았으니, 불을 바라보는 데서 그 중요성이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사람은 불을 이용하여 새로운 갈래의 음식을 만들었고, 새로운 갈래의 옷을 만들었으며,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던 도구들을 만들어 냈다. 오늘날 우리가 쓰고 있는 모든 도구들이 그런 것이라 하겠다. 최첨단 기계들과 비교적 전통적인 도구들이 빠짐없이 그런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불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을까? 불을 신으로 이해하여 숭배하던 시절에 견주어, 오늘날 우리들의 이해가 정확하기는 한 것일까? 즉 불이란 여러 방법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열’을 수반한 에너지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예를 들어 밥을 짓는 데 요..
차를 마신다는 것차를 마신다는 것은 참 묘한 일 가운데 하나다. 다른 음료를 마실 때와는 달리 그 이면에 어떤 선입견이 따라다니기 일쑤다. 차를 마시는 것이 철학이나 사상 자체를 마시는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며, 차를 마실 때는 어떤 정해진 의식을 갖추어야 하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는 탓이다. 그래서 차는 다른 음료와 달리 쉽게 마시기 어려운 음료의 하나가 되었다. 또 이미 차를 마시게 되었다 하더라도 문화적 수준이 높아 보이는 사람과 만나면 자신은 아직 차를 제대로 마시지 못한다고 겸양하기도 한다.마치 유령처럼 붙어 다니는 차에 대한 이런 관념은 과연 타당한 것일까? 끼니를 잇기조차 어렵던 지난날에도 차를 마실 수 있었던 어떤 부류의 옛사람들이 지어내고 그런 부류의 흉내를 내는 오늘날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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