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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남긴 감정, 에이피 사진전 - 너를 다시 볼 수 있을까 (세종문화회관 전시실12월 29일~ 3월 3일 까지) 중 북한 사진 중에서
산책
거울이 거울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나는 그 거울에 착 달라붙어 거울 속으로
같이 들어갔다
길 하나가
같은 곳으로 향하는
두 길로 나뉘고 있다
1
당신은 스스로가 종이처럼 얇다고 했다
안을 수조차 없이 얇은 당신은
여럿의 그림자를 갖고 있어서
당신의 세상은 모든 그림자가 유효했다
내가 당신에게 포갠 채
한 세상 안으로 미끄러져 들었을 때
수레국화가 지천인 산언저리 비탈이었다
그곳에는 난장이들이 재주를 넘고 있었다
마지막 난장이가 내 앞으로 와서
재주를 넘을 때 세상은
일식에서 깨어나고 나비 하나가
하얀 선으로 날아올랐다
2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도 또 하나의 아픔이라
아픈 내 살갗 말고도
아픔이라는 번짐이
나를 안고 바람결이 되어
힘을 주었다 빼기를 반복하며
나의 떨림을 자각해 내곤 했다
몸살이 끝난 날 나에겐 오늘이고
당신에겐 기약 없어진 내일이다
3
폐 속에 매운 연기가 피어나는 것은
영혼이 슬프기 때문이다
영혼이 슬픈 건 풀어야 할 매듭 위에
의자 하나가 머물러 섰기 때문이다
간지럼이 아쉬움일 때 슬픔으로 가고
아픔이 고마움일 때 반가움으로 온다
나를 감싸고 스미는 아픔이여
너도 존재로다
4
당신 손을 놓고 당신의 걷은 모습이
바라다 보이는 옆길을 따라
나란히 걷는 꿈
그 길이 지나는 곳에 있는 물 속
폐사지를 거니는.
발끝에 차이는 기와 부스러기들이
한때는 여러 그림자들을 숨겨주었고
그들을 자신 안에 유폐시키던 때를
마주하는 것이다
의자가 여전히 비어있고
물고기가 구름마냥 헤엄쳐 와서
나 여기 온 것을 반길 입맞춤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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