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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와 뻐꾹

haeoreum 2017. 12. 3. 16:08


2017. 12. 3 앵무와 뻐꾹
슈타이너의 발도로프 교육에서 '오이리트미'는 氣運의 자동발현이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기운을 돌려서 심신의 조화를 이루려는 행위로서 심신의 조화 이에에 무력으로 쓰지 않는다. 무력으로 쓴 예는 티벳의 수행자 밀라레빠가 자신의 집안을 망하게 한 사람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배워서 행했던 '흑마술'을 말한다. 밀라레빠는 후에 뉘우치고 새로운 스승을 만난 후에 대참회의 수행으로 열반을 이루었다.
현대에도 주변에는 기운을 쓰는 수행자들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기운 쓰는 것을 표시내지 않고 소탈한 삶을 살아간다.
수행력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심안과 영안도 상황에 따라 다르다. 나는 심안에서 非의 현상이나 존재성을 보는 것은 아주 잠시 느낀적이 있다. 그러나 몽각일여에서 상징계를 보는 호접몽은 다르다. 다의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현재성이 있어서 形以上의 지혜로 자신과 세계를 살필수 있는 좋은 점이 있다.
선천성 맹인도 마음의 눈은 세계를 굽어 보는 부찰의 그림을 그리는데. 중학생 나이가 되어 정상인 방식의 적응 프로그램으로, 보는법을 정면의 시선으로 바꾸면 자존감이 떨어진단다.


鸚鵡앵무와 뻐꾹의 소리는 허무한 느낌이 있다.
非의 현실에서 기운으로 타인에게 깃들어 의식과 말을 대신하고 자신을 보기를 타인에게 미루는, 巫에 빠져 초월의 지평을 기벽으로 막고 사는, 앵무새와 뻐꾸기의 삶이다.

본다는 것이 기운의 현상이고 눈인데 일상의 육안도 눈 주위의 기운이 맑아서 크게 뜨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상쾌하다. 어느 눈이 좋다고 집착 할 일일까. 능력으로 타인에게 집착 말고 자신을 밝히는 등불로 쓰면 어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