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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탄 아라리 1

 

 

 

 

 

벗나무 가지에 밤새 눈이 쌓였습니다

 

 

그 위에, 햇살이 비칩니다

 

 

눈이 녹으며 툭 툭

 

 

아래로 떨어집니다

 

 

나무 눈 햇살

 

 

대체 이들은 무슨 사이일까요

 

 

저기 연못에서 날아오른 오리가

 

 

뭐라고 알려주고 가는데

 

 

아직은 못 알아듣겠습니다

 

 

 

 

 

모필에 먹을 듬뿍 묻혀 글씨를 쓰면 굵은 기운을 담고 꿈틀거립니다

스승 말씀이 그렇게 써진 글씨를 '벌레'라는 의미라고 하셨습니다

벌레는 그렇게 기운을 담고 있는 존재의 기본형상이겠지요

누에는 벌레 중의 벌레입니다

누에치는 방에서 듣는 누에가 뽕잎을 먹는 소리는 비가 오시는 하늘의 소리입니다.

뽕잎이 쬔 햇살과 비와 바람과 안개와 뽕잎 따는 아낙네들의 노래소리를 받아 먹으며 누에는 자신을 바꿔 갑니다

누에는 자신을 키우며 고개를 넘고 넘어 그 하늘의 기운을 뱉어 고치를 틀어 자신을 가둡니다

누에는 고치 속에서 새로운 하늘을 꿈꾸며 잠을 자고

잠을 깬 후엔 새로운 하늘 위로 나비가 되어 날아오릅니다

 

 

 

 

쪽빛으로 물들고 순백으로 바래가는 하늘가에

가랑잎 하나 나풀거리며 날린다

슴슴한 향기의 어머니 젖무리 같이 가을이 구름으로

부풀며 내부에 하얀 고치를 수없이 만들어 간다

나는 그 중 한 방에 들어가 여름내 갉아먹은

잎사귀의 비명으로, 언젠가 찾아올 봄날에

방을 이룬 실을 풀고 날아오르는 꿈을 꾼다

순백의 하늘이 쪽빛으로 다시 물들어 갈 무렵

나풀!

날아오르는

 

 

누에고치를 풀어 실을 잣고 그 실을 씨실과 날실로 짜면 누에가 받아 꿈으로 저장했던

하늘의 이치를 현실에 푸는 에로스와 같은 비단자락이 펼쳐집니다.

사람이 누에처럼 스스로 벌레임을 알고 본래를 향해 올라가 고치를 틀었다가 나비처럼 다음 해 봄에 날아오르면

비로소 새롭게 태어나 새 사람이 되면 하늘은 그 사람에게 복을 내립니다

그렇게 초월했다가 다시 시작하는 일이 바로 문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