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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슬슬 반야심경을 읽어나가 볼까요?

먼저 제목부터 짚어봅시다. 반야심경의 정확한 이름은 불설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佛說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불설이라는 두 글자를 붙이기도 하고 붙이지 않기도 합니다. 불교의 경전은 불설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생략해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불교를 공부해보신 분들이라면 대승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상을 입멸入滅한 뒤 300년 내지는 500년 뒤에 새롭게 출현한 불교라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반야심경은 대승불교의 경전이기 때문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직접 설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불설은 좀 억지가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조금 설명을 해드려야겠습니다.

사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는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견해가 매우 다릅니다. 그 차이는 기독교와 유대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다른 것과 같습니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신의 아들로 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의 아들이라고 믿어야만 비로소 그 사람은 기독교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단순히 한 인간으로 생각한다면 유대교가 됩니다. 유대교에서는 예수를 한 인간으로 보고, 유대교에 대한 반역자, 범죄인으로 치부하여 그를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석가모니 부처님에 대한 견해는 기독교와 유대교만큼이나 서로 차이가 납니다.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처음부터 부처로 보고, 우리들과 같은 어리석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인간의 모습으로 출현한 존재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와는 달리 소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처음에는 인간이었으나 나중에 깨달음을 열어서 부처가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대승불교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에게 절을 하지만 소승불교에서는 절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숭배하는 것이 우습다면서 그들은 대승불교도를 비웃고 있습니다.

소승불교도들은 35세에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연 후의 석가모니부처님만이 부처로서 숭배의 대상이 된다고 말합니다.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는 이처럼 견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불설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대승불교에서는 본래 부처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우리들 중생을 위해서 일부러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들에게 가르침을 설하시고, 80세 되던 해에 다시 진리의 세계로 돌아가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은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 아닙니다. 본래 모습을 지니지 않은 부처였던 존재가 아주 잠시 인간의 모습을 취하셨다가 다시금 모습이 없는 부처로 돌아가셨다고 대승불교에서는 보고 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인간의 모습을 취하고서 가르침을 베푸는 동안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모습이 없는 부처의 가르침을 들을 수 있는지에 대해 그 방법을 가르치셨습니다. 그 방법으로 수행한 사람들이 고요하게 선정을 닦고, 명상을 하고, 명상체험 속에서 모습이 없는 부처와 만나고, 모습이 없는 부처의 음성이 없는 음성의 설법을 듣고 글로 남긴 것이 대승불교의 경전입니다. 그러므로 대승불교 경전은 모습이 없는 부처가 설한 것입니다. ‘불설이라고 하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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