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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는 초음파를 내어서 사물을 봅니다. 아니 본다기보다는 듣는다고 말하는 편이 정확할지도 모릅니다.

백과사전에 따르면 박쥐는 5만 헤르츠에서 10만 헤르츠에 이르는 초음파를 매초 여러 차례 내지는 수십 회 규칙적으로 내어서 그 반향을 귀로 듣고 장해물이나 사냥감을 탐지한다고 합니다. 로봇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봇 쪽에서 전파를 쏘아서 그것이 되돌아오는 것을 탐지해서 물체를 확인합니다.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것도 이와 똑같은 원리라고 보고 있습니다. 불교의 이론에 따르면 우리가 사물을 볼 때 사물이 보내는 빛을 우리 쪽에서 수신자의 입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쪽에서 뭔가를 발하면 그 뭔가가 물체에 닿은 뒤 되돌아오는 것을 감지해서 사물을 본다는 것입니다.

제가 생각해낸 비유이므로 우리 인간이 발하는 것의 이름은 없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없으면 불편하기 때문에 일단은 인식파認識波라고 불러두기로 하겠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쪽에서 사물에 인식파를 쏘아서 그것이 되돌아온 것을 본다는 것이 바로 불교의 견해인 것입니다.

우리가 상대를 다정하고 따뜻한 눈으로 보면 상대는 좋은 사람으로 보입니다. 증오의 눈으로 보면 가증스럽게 보입니다. 그것은 내 쪽에서 발하는 인식파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전철 안에서 소리지르며 뛰어다니는 아이에게 우리는 증오의 인식파를 보냅니다. 그 아이가 다른 사람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아이가 내 자식이라면 다정한 인식파를 발하기 때문에 소란피우는 것도 건강하고 귀엽게 보인다는 말입니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라를 보고 몹시 놀란 경험이 있는 사람은 뭔가 둥그런 것만 봐도 겁에 잔뜩 질려 공포의 인식파를 발합니다. 하지만 내가 쏘는 인식파가 정상이라면 내 앞의 사물은 자라가 아니라 솥뚜껑일 뿐입니다.

어두운 밤 길가에 어떤 긴 물체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개 뱀을 무서워하기 때문에 이라고 생각하면서 공포의 인식파를 쏩니다. 그러나 평상시의 마음으로 인식파를 쏘면 그 사물은 뱀이 아니라 새끼줄입니다. 새끼줄을 뱀으로 오인한 것이지요.

저는 색약인데 색약인 사람이 발하는 인식파는 보통 사람과 조금 다릅니다. 그러므로 저와 아내는 서로 색을 다르게 식별합니다. 그래서 우리 집에서는 이따금씩 혼란이 일어나기도 합니다만.

이처럼 불교에서는 인식파의 차이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사물은 누가 보아도 바로 이것이다라는 절대불변의 모습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보는 사람이 달라지면 사물은 다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사물을 공이라고 말합니다. 공인 사물에게 우리들 각자가 제각각의 인식파를 보내고 그 인식파가 되돌아오는 것을 감지하는 것입니다. ‘은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반야심경은 모든 사물은 공하다는 것을 표명한 경전입니다.

반야심경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사물은 공하기 때문에 우리들 쪽에서 발하는 인식파를 바꾸면 사물은 다르게 보일 것입니다. 새파랗게 겁에 질린 공포의 인식파를 보내면 뱀으로 보이지만 인식파를 좀더 강하게 해서 평상시의 마음으로 본다면 뱀은 사라집니다. 이런 점은 귀신의 저주와 같은 공포에 떨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귀신의 저주는 겁에 질린 인식파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인식파를 바꾸면 그만인 것입니다. 반야심경은 그와 같은 것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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