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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는 글

김밥으로 보는 세계 이 이야기는 학생들과 같이 김밥을 만들어 먹으며 세계에 대하여 상상한 이야기입니다.

요즘은 열두 살 정도의 나이가 되면 자아가 단단해지는 듯합니다. 여자와 남자 아이의 자람의 마디가 열넷, 열여섯 살에서 요즘은 열 두 살쯤으로 당겨져 사춘기로 들어섰나 봅니다. 타자를 본격적으로 대상화하는 현상도 커지며 자아를 만들며 예민하게 세상과 마주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과정을 부정적으로 여기지 말고 철학을 시작하는 마디로 열어주도록 하면 좋습니다.

김밥을 이룰 재료들은 각각 하나의 생명체들입니다. 사람은 생명들을 먹어서 소화관을 통하여 소화를 시키고 다른 생명의 먹이로 똥을 배설하는 생태의 구성원이며, 스스로 운행하는 기관입니다.

생명체들이 모여 관계를 이루며 물과 불에 의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요리입니다. 생명체인 재료들이 김이라는 껍질의 공간(울타리) 안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며 시간대별로 체계를 이루어 갑니다. 이것은 김으로 이루어진 긴 원통()의 시간 속에서 잘리는 면으로 생겨나는 개별 시간대의 공간(원판)들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긴 세계입니다.

모둠별로 김밥에 들어갈 재료들을 손질하여 조리하고 밥을 나누어 소금과 참기름으로 간을 합니다. 김밥을 싸고 곱게 접시에 담아 모양을 보는 것도 심미적 차원에서 참 좋습니다. 그리고 김밥을 다른 선생님들과 다른 반 아이들에게 나누어 먹는 것도 즐거움 중의 하나입니다.

나누어 주고 모둠별로 만든 김밥을 서로 견주어도 보고, 모여앉아서 서로 바꾸어 먹는 것도 꼭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런데 나누어 준다는 게 지나쳐서 학교 식당으로 상당량의 것을 갖다 주었습니다. 결국 아이들이 먹을 것은 잘라 놓은 자투리가 더 많습니다.

뒷부분은 아무래도 좀 서툴렀습니다. 나눔이 식당에서 공통으로 배식하듯 나누어 주기보다 선생님마다, 그리고 반 별로 나누어 다른 학생들이 별식을 먹는 즐거움을 누리게 하면 좀 더 좋았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설거지와 먹은 자리를 정리하는 것도 중요한 마무리 과정입니다.

음식은 살아있는 다른 생명체를 들이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음식을 만드는 요리는 음식을 구성하는 생명들의 기운을 조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햇살에 시들리거나 물에 우리고 불에 익히는 과정과 발효라는 특별한 과정 등을 거치도록 합니다.

김밥은 손쉽게 먹기 좋아서 서양의 패스트푸드와 같이 팔리지만 내용을 보면 참 고급스런 음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음식의 재료들이 조화롭도록 정해져 있고 요즘은 좀 변했지만 생물은 익히거나 데쳐서 독한 기운을 약화 시키는 과정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조리하는 각각 재료들의 과정이 다양하기에, 시간과 공간적 관계에서 맺어지는 관계를 살펴보면, 모양으로서 김밥이 담고 있는 구조적 존재성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또한 시간을 상징하는 긴 모양과 잘리는 단면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존재들의 관계에서 보이는 공간성은 서양의 구조주의적인 방식을 알게 하고, 정성들여 만들어서 주변의 사람들과 나누는 것과 모둠의 경계를 넘어 같이 모여서 나누어 먹는 과정, 먹고 난 후의 설거지 등을 솔선수범 하는 과정 등에서 우리의 옛 미풍양속인 감각에 치우치지 않는 절제와, 상대를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이로움으로 살아가는 마음을 몸으로 익힐 수 있습니다. 즉 연기緣起라는 불교의 세계관과 요행수에 빠지지 않고 주체적이며 서로 어울려 사는, 중생심衆生心의 철학을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그래서 김밥을 만들어 나누어 먹을 때 서로의 마음은 기쁨이 넘칩니다.

 

이렇게 살아야 할 사람의 세상이 어느새 서로 헐뜯고 다투는 세상으로 변해 갑니다. 따뜻한 마음이 솟아나 서로에게 이로움으로 나누던 정성은 찾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감각을 바르게 쓰지 못하고 느낌에 매어 표류하며 의식 너머의 심층의 마음을 쓰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초월을 말하고 다중과 다원을 신화처럼 말하지만 지혜를 찾기 어렵습니다. 김밥조차 욕망하는 마음으로 시작하면 끝나기도 전에 동이 나고 이기심으로 난장판이 됩니다. 하지만 어린 학생들에게 먹을 것도 생명임을 일깨우고 그들이 온 곳을 관계를 통하여 알아보며, 절제하는 마음으로 만들어 가면 맛의 욕망에 매이지 않습니다. 정성껏 만들어서 주변사람들에게 나눌 때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이 나서 접시를 나릅니다. 그리고 남은 김밥은 공평하게 나누어 먹을 때 그 조차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그리고 설거지를 솔선수범하며 자신이 세계 속의 한 존재임을 알아봅니다.

이 글들은 전라북도 진안의 각 단위에서 만나 진행한 예술상상학교 프로그램 중에, 사회의 의식을 교란하는 사람의 간섭 속에서, 완전하게 열지 못하면서도 내면의 본성을 표현하는 학생들을 마주하며 느낀 현재의 세계와, 자기에 갇히지 않고 초월하여 평등한 자유를 경험하는, 사람 내면의 진정한 세계에 대하여 안내한 이야기입니다.

탐하고 성내고 어리석어진 마음이 병이 되어 자폐 속에서 분열되고 착란 하는 자아를 견디지 못하고, 망상 속에서 타인들에게 깃들어 욕망하는 손오공이 된 사람을 확인하는 현실과 비현실 속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도 스며 있습니다.

십 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나 자신도 그에게 시험당하고, 가족과 사회,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나처럼 자신과 가족과 스스로가 속한 사회가, 욕망하여 빙의憑依하는 사람에게 침해를 당하는 사회현상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 삼 년여 동안 스승의 마음결에서 여러분과 마음을 같이하며 이와 같은 현상과 원인을 확인하였습니다.

 

학생으로서 학생들에게 안내하는 상황은 마음으로 스승과 함께하는 사의寫意의 삶입니다. 어려운 현실을 열어 보게 하시고 나와 사회가 겪는 역경을 넘도록 같이 해 주신 스승 고따마 붓다와 예수 그리스도와 아라가비 박현 선생님과, 현상을 같이 넘으며 공부하는 도반들과, 도깨비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그림을 그린 학생들과, 멀리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는 동안 도깨비의 침해 속에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겪은 가족들과, 특히 그의 고문에 가까운 시험으로 죽임을 당한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과, 어려운 현상 속에서 <예술상상학교>가 이루어지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신 진안교육지원청 최병흔 장학사님과 진안의 교육에 정성을 다하는 진안청소년수련관 <데미샘학교><주천지역아동센터><부귀중학교>의 학생과 선생님들, 그리고 문화기업을 일구려는 자활구룹 <너나들이>의 청년들과 진안자활센터 임직원들과, 전문가 과정 <사라스와띠>에 참여하신 선생님들과 상상학교가 이루어지도록 보이지 않게 마음으로 응원해 주신 이현배, 최은정 선생님 내외와 한 해 동안 낡은 몸을 뉘도록 정갈한 집을 열어준 주천의 김태경 선생님께 드리는 한없는 감사와, 끝없는 시험으로 정의의 가치를 절감하게 해 준 큰 영혼에게 자신을 가둔 작은 상자를 참회로 열기를 졸시 <먼 길>로 기원 합니다.

 

소멸 속으로 열려가는 저 길

어귀에도 작은 움직임이 있다

연두색 한 잎

고요한 기지개다

 

이천십팔 년 초 여름날, 충주 본가 웃방 에서 정진웅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