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haeoreum 2018. 9. 16. 10:54


 

 

 

시라는 꽃이 피었다

벌과 나비가 날아들던 날

시는 단단해지는 걸 느끼며

시들기 시작했다

시는 시듦에서 단단함으로

자신을 바꾸어 갔다

단단함은 스스로를 뭉치며

부풀고 시든 걸 떨어뜨리고

자신을 달구어 갔다

그렇게 안팎이 뜨거워지고

서풍이 그 걸 멈추고자 찾아왔을 때

그림자에 자신을 포개며

대지에 떨어졌다

대지는 차가웠으나 그림자와 하나가

될 수 있었기에 안온했다

시는 이제 스스로가 없어졌다

자신의 그림자를 만들던 대지조차

자신과 하나였음을 예감하기 때문에,

 

자신을 버린 시에게 벌레들이 찾아왔다

새들도 찾아왔다

자신을 버린 시의 살을 벌레가 베어 먹고

새들은 남은 씨를 삼키고 바람이 자는

고목의 그루터기 속으로 갔다

시는 없는데 시의 그림자는

씨가 되어 눈에 덮이고

일부는 고치가 되었다



(2012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배반의 말  (0) 2018.10.24
네가 잠들었을 때  (0) 2018.09.18
우물에 빠진날  (0) 2018.09.13
"밝은 선비가 되어 꿈이라도 꾸자"  (0) 2018.05.24
기억 한 철  (0) 2018.05.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