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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이정 선생님의 페이스북 이야기를 옮긴다.

카이, 카이, 카이 khai, khai, khai*
불과 두어 달 전에
베트남 중부 빈딘성 작은 마을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 합니다
한국인 참배객을 태운 버스가 쯔엉탄 학살 위령관을 떠나려는 순간
3킬로를 자전거로 달려와 땀범벅이 된 한 사내가 다급히 버스를 막아서고는
카이, 카이, 카이
내 말 쫌 들어달라고,
나도 말 좀 하게 해달라고 소리쳤습니다.

내가 태어난 지 사흘 만에 엄마, 누나, 할머니, 친척들이 방공호에서 다 죽었어요.
왜 한국 사람들이 여기까지 오고도 우리 마을에는 안 오는지 너무 억울해서 왔어요.
우리 마을에는 아직 위령비도 없어요.
여기처럼 위령비라도 있으면 한국인들이 찾아올 텐데
우리 엄마도, 내 누이도 억울하잖아요.
우리 가족 무덤에도 한국인들이 향을 한번 피워주세요.
당신들의 나라가 앗아간 엄마의 이름을 한 번만이라도 부르고 기억해주세요.

쯔엉탄 아랫마을 깟홍사 미룡촌에서 태어난 판 딘 란Phan Dinh Lanh
떨리는 목소리로 태어난 지 사흘 만에
호랑이 표식을 단 남한 병사에게 어미 잃은 사연을 얘기하는데
꼬박 오십 년이 걸린 거였습니다.

미안하다 미안하다라는 사죄의 말조차 감히 건네지 못하고 돌아오는 버스 안이
처연한 눈물과 탄식으로 가득 차오르는 동안
어떤 이는 제주의 4월을 다시 떠올리고
어떤 이는 맹골수도의 찬 바다에서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아이들을 기억하며

카이, 카이, 카이
내 말 좀 들어달라고
카이, 카이, 카이
나도 말 좀 하게 해달라고

* 카이(Khai)는 베트남어로 '증언하겠다' 혹은 '진술하겠다'라는 뜻이다.

..............
제주에 사는 이종형 시인의 첫 시집 <꽃보다 먼저 다녀간 이름들>을 읽다가 갑자기 가슴이 꽉 막힌다. 곧 베트남 가는데 이 시집 들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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