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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융의 알기 쉬운 『금강경』 읽기

<페이융의 알기 쉬운 『금강경』 읽기> 코너에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불경 연구가인 페이융이 불교 경전, 그 중에서도 『금강경』을 누구나 이해

할 수 있도록 현대적으로 해석한 책,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유노북스 刊, 2016) 중에서 한 편씩 발췌해 소개한다.


구체적인 사물이 나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있다면, 나도 두 팔을 벌려 그 구체적인 사물을 받아들여야 한다. 언어나 문자는 필요하지 않다. 구체적인 사물이 바로 눈앞에 있으니 말이다.

지난주에 최신형 렉서스를 샀다고 치자. 그것을 운전하고 있는 사람은 바로 자신이고, 그 차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차는 실제로 존재한다. 부처는 모든 형상은 허망한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렉서스 자동차가 눈앞에 또렷하게 존재하고, 핸들을 손으로 직접 만질 수도 있다. 그런데 어떻게 허망한 것일 수 있을까?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이름이 헛된 것이라는 말은 이해하기 쉬워. 자동차라는 이름도 그저 우연히 지어진 것일 뿐, 처음부터 그것을 소라고 불렀다면 지금 우리는 자동차를 소라고 부르고 있겠지. 그런데 구체적인 자동차가 헛된 것이라는 말은 잘 이해가 가지 않아. 자네가 마술사처럼 자동차를 눈 깜짝 할 사이에 사라지게 만든다면 부처의 말을 믿어주지.”

물론 나는 자동차를 순식간에 사라지게 만들 수 없다. 부처가 살아 있을 때도 그런 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부처가 말한 허망함 또는 공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없다는 뜻이 아니다. 자동차는 분명히 존재하며,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것이다. 이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부처가 말하고자 한 것은 이렇다.

첫째, 광고나 영업 전략, 영업 사원의 홍보, 자동차의 외형, 장식 등이 만들어낸 환상이 이 자동차에 고귀함과 우아함 같은 이미지를 부여해 사람들에게 이 자동차를 소유하면 자신도 덩달아 어떤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상상에 빠지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헛된 환상이다. 외형적인 장식이나 광고 카피, 광고 화면이 아무리 근사해도 자동차는 그저 모터를 달아 달리게 만든 기계일 뿐이다. 그 환상 속에 도취되어 있다면, 분명히 실망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환상을 즐기면서도, 자동차를 자동차 그 자체로 바라보고 그 외의 다른 것들은 모두 나의 상상임을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여름에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수많은 형상으로 변한다. 가끔은 강아지 같고, 또 가끔은 원숭이 같다가, 어느새 궁전처럼 변하기도 한다. 그걸 보고 정말강아지나 원숭이, 궁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대부분 그를 어리석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우리는 이 구름 강아지를 진실한 것으로 여기면서도 스스로 어리석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둘째, 이것이 자동차가 되고, 또 나의 자동차가 된 것은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한 결과다. 제 스스로 자동차가 된 것이 아니라 기술, 엔지니어 등 여러 가지조건이 서로 어울려서 자동차를 만들어낸 것이다.

자동차가 생산되기까지 여러 가지 인연이 충족되었고, 그런 다음에 또 다른 인연들이 복합적으로 충족되었기 때문에 내가 그것을 사게 되었다. 그중 어떤 요인이 달라졌다면, 이 자동차와 나의 관계도 바뀌었을 것이다.

이런 자동차가 만들어지고, 또 나의 소유가 된 것은 어떤 독립적이고 절대적인요인 때문이 아니다. 그러므로 구체적인 사물을 바라볼 때, 그것을 독립적이고절대적인 전체로 생각해서는 안 되며, 여러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인식해야 한다.

셋째, 이 자동차가 지금 이 순간에는 차 한 대이고, 또 내게 속해 있지만, 앞으로 다가올 매분 매초마다 차의 부품은 계속 노화되고 변화할 것이며, 수많은 불확실성이 닥칠 것이다. 교통사고라든가 나의 경제적 여건 등으로 인해 현재의 상황이 바뀔 수 있다. 현재의 상황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자동차는 언제든 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자동차를 커다란 조합이자 동태적인 존재로 보아야 한다.

이런 관찰은 일종의 게임과 같다. 하지만 부처는 이 게임을 아주 진지하게 대했다. 이 게임이 지금 우리가 추구하고 미련을 갖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허무하고’, ‘믿을 수 없는 것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우리는 소유하고 누리는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집착하면 실패하게 된다. 그러므로 부처가 말하는 이란 소극적인 도피가 아니라, 진정한 모습을 용감하게 인정하고, 믿을 수 없는 존재 속에서 믿을 수 있고 변치 않는것을 찾는 것을 의미한다.

 

만들어진 환상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물을 소유하고 누려라.

 

동시에 그것들에 대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

 

이것이 믿을 수 없는 존재들 속에서 믿을 수 있고 변치 않는 것을 찾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