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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의 정신과 몸의 관계는 어느 정도에서 변화하는가

히로 사치야가 반야심경을 풀어 놓은 에세이 <행복의 발견 중에서>

**두 걸음 후퇴, 한 걸음 전진

 

반야심경에는 보리살타 즉 보살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미 관자재보살이라는 이름에서 등장했습니다. 그럼 보살이란 무엇일까요?

보살이 진리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 ‘구도자의 뜻이기는 하나 특히 대승불교의 수행자, 즉 대승불교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승불교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누구든지 보살입니다. 거기에는 관자재보살이나 지장보살과 같이 이미 거의 모든 것을 완성한 보살도 계시지만 아기 보살, 유치원생 보살, 초등학생 보살 수준에 지나지 않는 우리도 진리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상 보살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저는 대승불교는 나와 네가 모두 보살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불법의 길을 걸어가는 종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승불교 경전인 법화경에서는 상불경보살常不輕菩薩이 등장합니다. 부처님 전생의 몸인 이 보살은 이름 그대로 자신이 만나는 상대방은 그 누구든지 가볍게 대하지 않는다는 실천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상대방을 무시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자기가 만나는 사람은 모두 보살이기 때문입니다. 보살이기 때문에 반드시 부처가 됩니다. 길에서 만난 사람은 누구든지 간에 언젠가는 반드시 부처가 될 것입니다. 상불경보살은 그런 이유에서 아무도 무시하지 않고 모두 다 부처가 될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경배하며 예배하는 수행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어쩌면 절을 받은 쪽은 기분이 나쁠지도 모릅니다. “뭐하는 짓이야!”라고 하며 화를 내면서 상불경보살을 막대기로 때리거나 돌을 던져서 쫓아버리고 있습니다. 상불경보살도 하염없이 맞고만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부리나케 도망칩니다. 그리고 돌이 날아오지 않는 곳까지 도망친 뒤에는 다시 그 사람에게 절을 합니다. 상불경보살은 그와 같은 예배행을 계속했습니다.

저는 우리처럼 대승불교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에게는 이러한 상불경보살이 가장 모범적인 이상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어찌되었든 경멸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그래서는 안됩니다. 누구든지 모두 보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아기 보살이요, 유치원생 보살입니다.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이 어리석은 채로 걸어가고 있지만 그가 바로 보살인 것입니다.

저는 불교 수행은 두 걸음 후퇴, 한 걸음 전진이라고 자주 말합니다. 이렇게 책에도 쓰자 교정 보는 직원이 이것을 한 걸음 후퇴, 두 걸음 전진이라고 정정했습니다. ‘두 걸음 후퇴, 한 걸음 전진이라면 결과적으로는 후퇴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두 걸음 후퇴, 한 걸음 전진입니다. 결과적으로 후퇴하는 셈이 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전진해야만 한다는 생각은 초등학생보다는 중학생, 중학생보다는 대학생이 더 위대하다고 여기는 선입관입니다. 그러나 보살의 걸음이라는 것은 한 걸음을 걸은 초등학생이 아예 길을 걸으려고 하지 않는 대학생보다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견해입니다. 그런 눈으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봐야 합니다. 그런 생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절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대승불교의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