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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와 뻐꾹 슈타이너의 발도로프 교육에서 '오이리트미'는 기운氣運의 자동발현입니다. 이는 사람이 자신의 기운을 돌려서 심신의 조화를 이루려는 행위로서, 바른 수행자는 기운을 심신의 조화 이외에 무력으로 쓰지 않습니다. 무력으로 쓴 예는 티벳의 수행자 밀라레빠가 자신의 집안을 망하게 한 사람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배워서 행했던 '흑마술'을 말합니다. 밀라레빠는 후에 뉘우치고 새로운 스승을 만난 후에 대참회의 수행으로 깨달음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신화와 설화에 나오는 마법사들의 마술이 무의 상태에서 기운을 쓰는 행위입니다.

현대에도 수행력이 높은 수행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삿된 행위에 매이지 않고 소탈한 삶을 살아갑니다. 수행력이 높아지면서 생기는 심안心眼과 영안靈眼도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 나는 심안에서 비의 현상이나 존재성을 보는 것은 아주 잠시 느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몽각일여夢覺一如에서 상징계를 보는 호접몽은 다릅니다. 다의성을 내포하고 있어서 일반화 할 수는 없지만, 현재성이 있어서 形以上의 지혜로 자신과 세계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점이 있습니다.

선천성 맹인도 마음의 눈은 세계를 굽어보는 부찰浮察의 그림을 그리는데. 중학생 나이가 되어 정상인 방식의 적응 프로그램으로, 보는 방법을 정면의 시선으로 바꾸면 자존감이 떨어진답니다.

앵무鸚鵡(櫻巫)와 뻐꾹의 소리는 허무한 느낌이 있습니다. 의 현실에서 기운으로 타인에게 깃들어 의식과 말을 대신하고, 자신 보기를 타인에게 미루는 사람의 삶은, 에 빠져 초월의 지평을 기벽으로 막고 사는, 앵무새와 뻐꾸기의 삶입니다.

본다는 것이 기운의 현상이고 눈인데 일상의 육안도, 눈 주위의 기운이 맑아서 크게 뜨면 자존감이 높아지고 상쾌합니다. 어느 눈이 좋다고 집착 할 일일까요. 능력으로 타인에게 집착하지 말고 자신을 밝히는 등불로 쓸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