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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시는 일도 실용성에 바탕을 두어야 하겠지만, 그 실용성에는 마음의 실용성까지 포함될 것이니, 이 실용성의 바탕인 사람다움과 참선으로 드는 마음이 어디 다른 뿌리에서 왔다 할 것인가. 아무튼 필자는 차를 마심에 여섯 갈래 마음 길을 생각한다.

 

생각건데 차에는 무엇보다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다. 찻잎은 자신을 남김없이 풀어내어 차가 되었고, 차를 우려내는 맑은 샘물은 스스로의 깨끗함만을 고집하지 않고 찻잎의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끝없는 나눔과 걸림 없는 받아들임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차를 마실 때, 사람도 마땅히 그런 마음을 키워야 할 터, 그것이 사랑의 마음(愛心)곧 차 마시는 이가 갖추어야 하는 마음바탕이 아닐 것인가. 더 나눌 것 없이 나누어도 더러움이 묻어나오지 않고 아무리 받아들여도 그 양이 늘지 않는 차를 마시면서 사람은 거기에 담긴 사랑의 마음도 함께 마셔야 할 것이고, 이를 다시 제 몸에서 우려내어 나누어야 하지 않을 것인가.

 

다음으로 차에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찻잎은 본래 조금 찬 기운을 품고 있으며, 차를 우려낼 물은 불을 만나 뜨거운 기운을 가지게 된다. 또 이 둘이 서로 만나면서 차가움과 뜨거움은 함께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 온도만 중화되는 것이 아니다. 만남을 통한 따듯함이 생기는 것이니, 모든 따뜻함이란 본래 만남에서 오는 것이리라. 또 만남의 힘은 넓힘의 힘이기도 하니, 작은 나를 벗어나서 큰 나를 이루어가는 힘도 이것이라 믿는다. 그러기에 차를 일러 그런 따뜻함, 곧 온심(溫心)의 표상이라 하고, 이를 차 마시는 이의 마음 길로 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셋째로 차는 늘 조화로운 어울림이자 그것을 지켜가는 한결같은 마음 곧 항심(恒心)의 상징이다. 언제 우려도 찻물은 늘 그렇다. 모든 것은 생로병사와 성주괴공(成住壞空)을 거듭하는 것. 진정 없어지지 않는 것은 없을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한결같은 게 있다면 바로 그것이 항심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차와 선을 한 맛이라 한들 고개를 저을 순 없게 된다.

 

넷째로 차는 오로지 하는 마음’(專心)이 없으면 제 맛과 제 향을 낼 수 없고 제 공능을 펴내지 못하는 물건이다. 오로지 하는 마음 또한 선의 마음밭일 터, 슬퍼할 만한 일이 있어도 마음이 가라앉지 않고 기뻐할 만한 마음이 있어도 마음이 들뜨지 않아야 할 것이니, 이 또한 차 마시는 이가 갖출 마음 길의 이정표가 아닐까.

 

다섯째로 차는 얼마만큼 넣고 어떻게 우리면 어떤 맛과 향이 날 것이며, 어떤 기운이 돌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하는 물건이다. 그래서 차 마시는 이는 늘 시작을 보고 과정을 지키며 그 끝을 기약하는 마음을 가지는 바, 이 또한 참선자의 마음 길이 아닐까 한다. 눈앞의 것만 쫓아가는 경박함을 이겨내는 두툼한 마음 길, 성심(聖心)이 곧 차의 마음길이라 여기는 것도 그래서이다.

 

마지막으로 차는 늘 편안한 마음으로 편안하게 우려야 제 맛과 제 향을 내고 제 공능을 펴낸다. 편안하지 않는 마음으로 우려내는 차는 잘못 우려낸 차에 습관이 붙지 않았다면 늘 맛과 향 등이 이상 할 수밖에 없다. 늘 편안한 마음(舒心), 이것은 바로 이익과 손해를 떠나는 마음이니, 사랑의 마음을 키워 모든 굴레에 매이지 않는 이 마음이 곧 차 마시는 이가 풀어내는 맑은 바람이 아닐 것인가.

 

어찌 차만이 이런 마음의 상징일까만, 차만큼 그런 마음을 쉽게 배우게 하는 물건도 드물지 싶다. 이런 마음을 내는 것이 곧 차의 길’(茶道)일 것이고, 이런 문화가 곧 차의 틀’(茶禮)이라 할 것이니, 차의 길과 차의 틀이 어찌 차 마시는 이의 굴레가 될 것인가. 다만 그 바탕을 안고 차를 마실 일이다.


스승의 말씀 <차를 마시고 마음은 내리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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