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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독일을 충격에 빠트린 교통사고 실험,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

이완 입력 2018.08.16 09:50 수정 2018.08.16 09:51 댓글 227
독일인들 부끄럽게 한 착한 사마리아인 법 딜레마

[이완의 독한(獨韓) 이야기] 규칙을 잘 따르는 편인 독일인들은 교통 법규 지키는 것에서도 그 특성이 드러난다. 고속도로에서 정확하게 차로를 이용하고, 횡단보도에서 보행자 보호에 철저하고, 긴급출동 차량을 위해 길 터주는 모습 등은 교통 문화가 건강하게 뿌리 내렸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최근 공개된 한 실험 결과는 자신들의 교통 문화에 자부심 가질 만한 독일인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관련 소식을 전한 독일 언론들은 ‘충격’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내용을 소개했다. 어떤 실험이었는데 이렇게 시끄러웠던 걸까

영상 속 도움을 주러 현장으로 온 사람들 모습 / 캡처=빌트 유튜브 영상

◆ 교통사고 현장 몰래카메라에 비친 모습

북독일 브란덴부르크주에 있는 오버하펠 경찰서는 지난 6월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한 운전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관찰해보기로 한 것이다. 실험 장소는 비교적 차량 통행이 잦은 편도 1차로 좁은 국도변. 차로 바로 옆에는 해치백 한 대가 사고를 당한 것처럼 전복돼 있고, 두 명의 여성 연기자가 부상을 당한 것처럼 상황을 꾸몄다.

실험이 시작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시간이 지나도 현장에 멈춰 상황을 살피거나 달려와 피해자를 구하려는 행동을 취한 운전자는 없었다. 그나마 모터사이클 운전자 한 명이 도움의 손짓을 다른 차들에 보냈지만 모른 척 지나쳐갔다. 조금 후 두 번째 모터사이클 운전자가 멈춰 섰고 둘은 뒤집힌 차량 쪽으로 다가섰다. 곧바로 다른 여성 운전자 한 명이 형광 조끼와 구급함을 들고 사고 현장으로 뛰어왔다. 실험이 시작된 지 10분 만의 첫 도움이었다.

◆ 착한 사마리아인 법

현장에 있던 오버하펠 경찰은 3시간 동안 진행된 실험에서 약 10%의 운전자만이 사고 현장으로 달려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실험을 진행한 경찰, 그리고 사고 현장으로 달려왔던 시민들 모두 냉정한 현실에 실망했다. 무엇보다 독일에는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 엄연하게 존재한다는 점에서 이번 결과는 더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강도를 당한 한 유대인이 상처를 입고 길에 쓰러져 있었을 때 유대 제사장, 레위인들은 외면하고 지나갔지만 한 사마리아인이 그를 구해줬다는 성경 복음서에서 유래됐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지 않고 그냥 지나쳤을 때 이것을 처벌할 수 있도록 형법으로 규정해 놓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최대 1년의 징역형까지 가능하고 프랑스는 더 심해 최대 5년까지 징역이 가능하다. 물론 벌금으로 대체될 수도 있다. 그 외에도 유럽의 많은 나라가 이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적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30여 개 주 이상이 이 법을 따르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응급환자를 발견했을 때 의료 기관 등에 신고해야 하고, 의료관계자가 아닌데 돕다 환자가 사망했거나 상해를 입었을 때 고의성, 중대 과실이 없다면 민형사상 책임을 지지 않게 한 '응급의료법'이 대신 존재한다. 다만 두 법의 차이라면 착한 사마리아인 법은 구조 행위를 유도하는 면이 강하고 우리의 응급의료법은 면책 부분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진=adac

◆ 무조건 위험을 무릅써라?

하지만 착한 사마리아인 법이라고 해서 무조건 위험을 무릅쓰고 타인을 도우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자동차에 불이 붙었을 때는 어쩔 수 없으며, 이미 여러 사람이 현장에서 도움을 주고 있다면 지나쳐도 위법 여부를 묻지 않는다. 내가 도울 수 없는 상황인 경우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현장을 떠나는 것도 괜찮다.

도움을 주다 다치거나 차량이 파손되었을 때는 보험으로 처리를 할 수 있으며, 만약 내 차에 있는 소화기로 다른 차량에 난 불을 껐다면 피해차량이 가입한 보험회사에서 소화기 교체 비용을 지불한다. 또한 우리의 응급의료법에서처럼 중대 과실이나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도움을 주다 생긴 문제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묻지 않는다.

착한 사마리아인 법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바로 피해자들이 내 도움을 받아들일지 의사를 확인하는 부분이다. 도움을 거부하거나 다른 방법을 원한다면 그 의견을 따르라고 독일 교통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사진=픽사베이

◆ 우리나라에 필요한 법일까?

착한 사마리아인 법을 우리나라에도 적용해야 한다는 얘기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한 설문 조사에서도 반대보다 찬성 비율이 조금 더 높게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반대도 만만치 않다. 윤리 영역, 도덕적 양심에 관한 것을 법으로 강제해야겠느냐는 것이다.

독일의 경우 대다수가 착한 사마리아인 법 필요성에 공감한다. 하지만 야간에 여성 운전자가 혼자 사고 현장에 다가가는 것 등은 독일에서도 꺼린다. 심지어 도와주러 갔다가 강도를 당하거나 상해를 입었다는 얘기들도 심심치 않게 나오기도 한다. 이런 예기치 못한 위험 때문에 경찰이나 소방서 등에 신고하고 차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겠다는 운전자들도 있다.

양심이든 법에 의해서든, 교통사고 현장을 목격했을 때 도움은 필요하다. 언제든 그 도움을 내가 받을 수도 있다. 모두가 자신의 양심에 기초해 타인을 돕는다면 법은 없어도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최소한의 사회적 기준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문제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아무리 처벌 가능한 법이 있어도 지키지 않는다면 죽은 법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이다. 이게 착한 사마리아인 법의 딜레마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이완

이완 칼럼니스트 : <모터그래프>와 <핀카스토리> 등에 칼럼을 쓰고 있으며 ‘이완의 카폐인’이라는 자동차 동영상 콘텐츠 제작에도 참여하고 있다. 현재 독일에 살고 있으며, 독일의 자동차 문화와 산업계 소식을 공유하는 일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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