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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Artist's Book)

그날 새벽

haeoreum 2024. 7. 1. 20:22

그날 새벽

 

그대 자고 간 여자의 원피스 위에

팔 하나 잘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습니다

 

벌써 세 시예요

새벽이 창을 넘어와 나를 이끌고

산성 너머 마을버스 종점 앞 가게 마루에

취해 쓰러진 늙은 남자의 속으로

나를 들여 보냅니다

 

잘 있다고 안개가 비껴 흐르며 겨우내 헐려 나간

시민아파트 잔해의 안부를 전해 주네요

 

그대 귀속에 강물처럼 고요한

새벽녘 먼데 개 짖는 소리

 

늙은 남자를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만

슈미즈 위에 끈적하게 흐르는 검붉은 체액

 

그저 축축해지면 자라 나오는 달개비 줄거리

 

노란 원피스 위에 물들이면

아주 잘 어울릴 거라며 말하던 알바트로스

 

 

 

(1999)

그날 새벽.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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