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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Artist's Book)

말을 걸겠다

haeoreum 2024. 7. 1. 20:04

말을 걸겠다

 

 

 

나무들은 어디엔가 기다란 촉각을 늘여놓고

잠자는 척 눈 감았구나

비탈밭과 평행으로 내려꽂히던

새매의 흔적처럼 혼을 허공에 스치며

거리를 가로질러 벌거벗고도 부끄럽지 않은

숲속의 사람들에게 다가가

시간의 진한 냄새를 던지려 할 때

어느 날은

정수리에다 입을 비집고 생각나는 것을 쏟아 올려 보고

하강하는 그것들에 우산 없이 젖고 싶을 때

새들의 넋두리와 목말라하는 영혼들의 슬픔

감싸 안은 검은 산

검은 피 깊게 흐르는 산을 넘자고

여름내 고춧골 덮었던 비니루 캐내어

대나무 깃대에 매어 세우고

말을 걸겠다

 

 

 

(1998)

말을 걸겠다.hwp
0.03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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