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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오는 날, 얼은 마음 올해는 다른 사람의 최면(빙의)행위로 인한 감각과 의식에 대한 간섭으로 예술상상 수업의 명상행위가 어려웠습니다. 나의 자각력과 즉흥적인 조율 그리고 돕는 이들의 마음이 없었더라면 표층의식차원의 자각행위조차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의식意識의 간섭은 심층의식의 활용과 그에 따른 따뜻한 마음의 소통이 어렵고, 꿈 자체를 꿀 수 없거나 악몽 아니면 만들어진 꿈을 꾸게 됩니다. 또한 표층의 의식에 머무르며 상상이 어렵습니다.

심층의식을 열고 내부와 외부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열릴 때, 자연스런 마음의 산책이 일어나고, 대상을 보고 그리는 선과 글은 자연스런 자기 마음의 표현입니다.

타의가 간섭한 날 다섯 어린이의 눈 오는 날 표현입니다 구도와 모양이 거의 같으며 그린 선은 마음이 담기지 않고 차갑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마음도 차갑고 소통하려 하지 않고 배타적입니다. 보이지 않는 감각기관인 를 점유당한 모양새입니다. 다른 모양의 자아가 움직이는 것과 같으며, 이렇게 타인의 삶을 왜곡시키는 를 쓰는 도깨비는 누구일까요?

 

보이지 않는 감각기관인 의를 과도하게 쓰는 현상은 보이는 감각을 과도하게 써서 생기는 부조리한 현상보다 더욱 심각하게 사회를 병들게 합니다. 예를 들면 일본의 전체주의(천황제와 군국주의)와 이중의 자아와 가성의 목소리로 표현되는 사람의 삶, 집단따돌림(이지메) 같은 사회적 기현상 등, 그리고 사회 각 분야의 가짜로 진짜를 대신하는 (가라오케 - 가짜오케스트라 등) 것들입니다. 모두 자신의 정체성을 바르게 하지 않는데 이유가 있습니다. 근래 들어 우리나라도 이를 닮은 의에 기대는 빙의憑依현상과 그에 따른 심층의 의식을 닫아놓고 표층의 의식에 머무는 삶의 모양을 보이고 있습니다.

바른 마음과 몸을 유지할 때 현실과 초현실이 서로 만나 열리는 상상이 이루어집니다. 느낌에 매이지 않고 중도에 머물며, 감각을 자유로우며 바로 써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