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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12. 5 극단의 이기심.
바른 사고와 사유수준을 빙의 하여 가족 개인마다 意를 점유한 채 낮은 정도의 사유를 하도록, 서로 대화할 때 충분한 기억을 통한 사고를 하고 그에 따른 바른 사유와 견해로 대응하여 소통하는 것을 막으므로써,
생활하면서 생기는 특정 문제점에 대하여 문제 있음을 이야기하면 사고와 사유의 깊이를 끝까지 들어가지 않고 중도에 멈추어 그수준에서 사유하므로써 깊은 사고와 사유를 통한 견해가 아닌 얕은 수준의 생각과 견해로 일축하고 원래의 좋은 생활을 버리고 천박한 모양의 삶을 살게 하도록 한다.
이렇게 생기는 마음으로 서로 맞서면서 집안의 사유와 그에 따른 문화의 한계, 즉 저급한 문화 속에서 한계 속의 일을 통해 가난한 생계를 유지하며 살다가, 기로변경과 홀몬 및 체액 등의 변화로 신체 건강의 한계까지 겹쳐 일찍 소멸토록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의를 점유당한 채 사고와 사유 등을 조종 당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살지 못하는 '의체'라고 하는 로봇 처럼 또는 좀비나 강시 처럼 정신적 노예가 되어 사는 것이다. 나의 아버지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초단기에 돌아 가신 것이다.
내가 지나온 삶을 찾아 그 동안의 인연이 있는 사람들을 만나고, 일을 하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알게 되는 것은, 나와 내 가족은 심각한 상황이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고 일반의 의식 차원에서는 스스로 알기(자각과 인식이) 어렵지만 대다수의 많은 사람과 집안, 그리고 학교, 기관, 기업 등 사회 단위로 전염병 처럼 확장하며 전염되고 있는 것을 본다. ​


집에 오니 김영태가 마치 자아처럼 깃들어 사고를 지배하는 어머니가 온통 메주 천지를 해놓고 있다. 음식에 대하여 말할 때는 빙의로 깃들어 집안을 실험대상으로 구조를 바꿔가며 무너뜨리는 놈 편을 들며 구체적인 설명을 하는 내 말을 일축하며 나를 정신병자로 치부한다.
신체교란은 당연하고 음식과 가구와 삶의 모양, 진용이의 노트북 구입(데스크탑 컴퓨터가 있는데 휴대용이 아닌 데스크탑용으로 더 구입하였는데 이는 내 노트북을 고장낸 김영태 자신의 행위에 대한 댓가를 마치 뻐꾸기 처럼 나의 동생의 사고를 교란하여 대신 사게하여 내가 사용하도록 하는 행위이다.) 등 모든 부분에서 내가 바로세우려는 집안 분위기를 자신의 의지대로 바꾸고 있다. 그래서 내가 집에 돌아 오는 날엔 우리 집안의 원래 모양으로 바꾸려는 나와 어머니(김영태의 意가 깃든) 간에 고성이 오가는 실랑이가 벌어지는데, 그래도 어머니인지라 결국은 제대로 돌이키지 못하고 점점 천박한 모양으로 끌려 간다.
돌아가신지 며칠 지나지 않은 아버직에 대하여 추모하는 마음은 집안 어디에도 없다. 단지 내가 쓰는 골방의 찻장 위에 모셔놓은 영정이 전부이다. 영정을 방에 모신 이유는 장례 후에 그릇장 맨 아래칸에 감추듯 집어넣은 동생의 무명으로 차가워진 마음이 동생 자신의 생각이 아니기 때문이고 어머니 조차 가끔 본정신이 들 때 외엔 아버지에 대한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내가 전북 진안에서 예술 프로그램 진행하느라 집을 비우는 사이에 음식을 만들어 파는 집으로 바꾸려는 모양이다. 지금 이 글을 적는 중에 머리와 등에 독기가 돌며 가렵고 따갑다. 교활한 마음이 느껴진다. 방금 전 자신의 아내 엄희진씨의 전화를 통해 경고한 말에 대하여 자신들도 힘들다는 답문자가 있었는데도 자신은 모르는 척 하며 이런 행위를 일삼는 것이다.
내가 쓰는 골방이 차와 책이 정리되어 있어서 평온한 집안의 한 단면 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년 반 전에 나도 수승한 스승으로 믿었던 저들의 빙의와 말에 속아 살던 집을 쫓겨나듯 밀려와 대부분의 책과 도구 등 가재도구를 텃밭의 비닐하우스에 쌓아두고 당장 필요한 것들만 들고 광으로 쓰던 이 골방에서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속고 또 강제해서 탈골로 굽어진 허리로 바로 앉지 못하는 몸에서 느끼는 굴욕감이 있다.

담장 밑에 수레바퀴 같은 꽃 범부채 씨를 뿌린 자리에, 어머니께 씨 뿌린 이야기를 신신당부 했는데도 동생을 시켜 무우 구덩이를 만들었다.

이와 같은 일들이 설마 할 만큼 믿기힘든 모양이지만 이기심으로 속이며 기운을 통하여 강제 해 나가기 때문에 거의 속수무책이다. 다만 이 비현실의 공간이 사실임을 알아 보는 눈 밝은 이들이 동의와 연대를 해 주기에 사실을 밝히려는 마음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몇 년 전에 즐겨 찾던 남미관련 이야기를 쓰던 분의 블로그를 둘러보다 칠레의 살버도르 아옌데 대통령의 정신을 노래한 <나는 산티아고 거리를 다시 걸을 것이네>와 전체주의 독일 당시의 나치 의사의 유태인에 대한 실험 행적을 다룬 영화 <죽음의 천사>에 대한 글을 보며, 이 글을 통해 먼저 고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