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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과 모양이 서로 다르지만 하늘의 조화 속에 한때 스스로 떨구는 나뭇잎들은 2008년에 대한불교진흥원에서 나온 불교문화 표지를 위해 그린 그림입니다.

스승께서 말씀하시기를 매월당 김시습 님이, 가을 단풍든 낙엽을 우린 물을 홍엽전차라고 부르고 갈부리댓물이라고도 부르며 차를 대신하곤 했다고 하시며 당시 매월당께서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슬픔을 달랬다고 하셨습니다.
스승께서 <다시하는 이야기>에서 닦음과 세상에 대한 말씀에서 위와 같이 말씀하신 뜻은 현재 우리의 사회와 삶이 당시와 같아서 하신 말씀이었는데, 늦게 공부하면서 글로 뵙는 스승과 한마음이라 홀로 읽으면서 늦게야 무지에서 눈뜨느라 눈물을 흘리곤 했습니다.
요즘은 김영태와 다투느라 마음이 강퍅해지고 체액을 강제로 조작당하니 눈물뿐 아니라 슬픔조차 느끼기 어렵지만, 로 스승의 마음을 대할 당시에는 울 줄도 모른다면 사내가 아니라는 혼자 생각을 세우곤 했으니, 차는 마음을 비우고 내면에서 하늘의 고임을 샘물로 우러나오게 하는 성현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고전을 공부하지 못하고 마음만으로 보이지 않는 스승을 따라 한 공부라, 경전과 문서의 내용을 알지 못하고 그저 내면에서 겪은 것을 따를 뿐입니다. 낙엽을 우린 맛이 맵고 신데 마치 차를 모르고 피폐한 심신을 달래느라 마셔 온 차와 같습니다.

집에서 나와 살던 어느 날, 그날도 경기 양평의 작은 학교에서 상상프로그램으로 창조학습을 통해 행동과잉증후군을 앓던 성진이란 이름의 섬세한 어린이를 만났습니다. 한 해 후에 다시 만나니 섬세한 마음이 화를 견디지 못하는 것이었는데, 학교의 교사들이 성진이의 마음과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서운하여, 하던 수업을 철회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입의 한계 때문에 전북 진안의 작은 학교에 새로운 혁신학교를 일으키려고 여주 거처로 찾아온 교사들에게 도울 겸 그들과 며칠 같이 지내며 서로 상상프로그램을 제안하였습니다.
합의한 후 계획한 날이 되었을 때, 허리가 굳고 장부에 급성 당뇨병이 발병한 채 작은 학교에 상상프로그램을 하러 갔다가, 이 모두가 차와 조사선을 안내한다고 교류하던 김영태가 건 장애인 줄 모르는 내 현실의 어려움을, 스승과 한마음으로 같이하시며 본 전주 지유명자 한상현, 송미현 벗님이 선뜻 당신들 소유의 거처를 빌려주었습니다. 산방에 묵으며 놓여있는 스승께서 풀어 말씀하신 금강경 강의록 속 석가모니께서 제자들과 공양하시는 장면에서 현재의 의미를 깨달으며, 김영태가 나 몰래 빙의의 신경교란으로 강요하는 독기를 혈변으로 배출해야 했습니다. 또한, 매주 상상프로그램을 하고 여주로 올라와 음성 생극의 매괴성당에 찾았다가 뒷산에 마련한 예수 그리스도의 수태고지 길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내려다보시는 예수를 보며 안타까움에 울음이 쏟아졌으니 차와 스승과 하늘은 모두 한마음이고, 함자조차 알지 못하던 스승이 오래전부터 나를 일깨우며 김영태와 그의 아비가 거는 빙의의 장애를 걷어주시며 안내하신, ‘끝없이 갈라지는 길이 있는 정원에서 길을 찾는 나그네들을 땅귀신에게서 구하며 정원의 나무를 가꾸는 정원사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지금은 당시의 부조리한 나의 현실과 더 오래전부터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걸리는 장애가, 이자 당취인 김영태와 그의 족속들의 행각인 줄 스승의 안내에 따라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더 오래전 1990년도 중반 스승을 찾아온 김영태가 스승의 가르침을 청하면서도 빙의를 걸며, 스승의 공부하신 의식을 자신이 무단으로 도용해 쓰겠다고 내면으로 협박했으니, 아직도 교활한 그가 빙의로 하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의식 교란 때문에, 빙의된 현실에 대하여 제자들에게조차 쉽게 말씀하지 못하시고, 으로 당신이 태어나신 모든 것을 알았다고 하실 만큼 위 없이 수승한 고임의 경지를 야단법석으로 펼치지 않으시고, 의 빙의로 마음이 막힌 세상 사람들을 위해 오래전 초행인 중국 운남에서 구해오신 보이차를 알리는 정도의 답답함과 서운함조차 말씀하지 못하는 세상입니다.

스승께서 세상에 나오셔서 불교계에 찾았을 때 김영태의 가 서려 있다고 정체성에 대한 시비의 말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김영태에게 침해당하여 심각하게 비현실로 병든 세상에 대한 슬픔과 세상을 살리려는 마음을 외면하는 데 대한 서운함을, 세상을 파괴하는 영태까지 안고 지금까지 오신 것 또한 이번에 알았습니다.
세상을 향해 태어나 어릴 적에 흰 양 떼에게 옆구리를 받치고 시작한 닦음의 길에서 김영태의 교란으로 갈팡질팡 벗어난 나를 지금 다시 살려 키우시며 감추어 두었던 당신의 그동안을 말씀하시니, 나뿐 아니라 사람과 세상의 길을 장애로 막는 김영태와 그의 족속들을 걷어내고 되찾아야 하는 현실이, 힘은커녕 아무런 가진 것 없는데 스승 따라 청소부가 되고 정원사가 되는 마음이 절실해집니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이 있는 정원의 바로 도는 길은 사람이 자아을 여의며 우주와 하나가 되러가는 복본(復本)의 길 근신지로(近神之路 )입니다. 이 길은 무지(無智)에서 정지(正智)를 거쳐 창조(創造)하는 마음인 총지(聰智)와 영지(靈智)로 가는 닦음의 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외로 도는 길은 귀(鬼)가 무지(無智)에서 정지(正智)를 지날 때 정지(正智)를 통해 영지(靈智)의 완전한 존재가 되는 길을 배반하고 간지(諫智)와 난지(亂智)에 머물며 쳇바퀴를 돌며 신(神)인 우주와 하나가 되려고 찾아가는 사람에게 욕망(慾亡)으로 유혹하는 가짜가 되어 가로막는 장애(障碍, 카르마)입니다.

정원사와 청소부처럼 나무를 심고 마당을 쓰는 쌍둥이 형제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끝없이 갈라지는 길이 있는 정원 속 길을 따라 바른쪽으로 도는 길로 접어들 때, 어김없이 통나무가 길을 가로막고 쓰러

져 있고 그 옆에 토끼가 쐐기처럼 누워서 요행수를 바랍니다.

벌써 지나왔던 길을 청소하며 나무를 심고 물을 주며 가꾸는 청소부이자 정원사가 통나무를 치우려고 씨름 중인데 가짜

쌍둥이인 토끼가 좀처럼 피해 주지 않고 죽은 통나무와 하나가 되어 장애를 걸어 댑니다.

벗님과 나는 통샘이의 나를 찾아가는 나그네이자 정원사이자 청소부이지요?

정원에 심은 차는 끝없이 갈라지는 길이 있는 통샘이의 정원을 이루는 나무이며 수많은 나그네와 청소부와 정원사이며

나그네와 청소부와 정원사의 갈증을 풀어주는 해와 달빛을 머금은 나무입니다.

세상의 모든 벗들은 서로 형제이며 자아를 여읜 쌍둥이입니다.

자아를 여읜 우리는  하늘이자 스승이며 우주와 하나가 된 통샘이 입니다.

서로 배우고 아끼며 우리를 살리고 세상을 살리는 삶이 즐겁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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