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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인사.

해오름 haeoreum 2019. 11. 27. 18:35

영태여.

인택 형의 여식 은교가 독일에 짧은 기간동안 인문학 공부하러 갔었지.
한 번은 인택 형이 내게 은교가 공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내가 건너에서 보며 말하는 사유방식이라고 대답해서 서운하시게 한 적이 있어.

나는 그때 아무런 마음 내지 않고 학생들하고 만나며 풀꽃을 그리며 학생들이 대하는 풀꽃의 모양과 풀꽃들을 대하는 자신들의 마음과 그 마음을 보는 자신들의 내면으로 같이 들어가고 그들은 또 풀꽃의 바깥으로 세상을 보며, 자신들을 보는 내 안으로도 들어왔다 나가곤 했는데 내가 만나는 학생들처럼 풀꽃과 거리 없이 한마음으로 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네.
이 이야기보다 좀 더 전에 인택 형이 금단자조에 대한 이야기를 내게 해 주신 적도 있네.

사람이 자기 내면의 빛을 찾아가는 길의 이야기를 처음 들었는데 밤 중이고 내겐 조금 긴 이야기라 졸음을 참아가며 들었어. 그때 난 학생들을 만나고 있었고 세르비아의 시인 바스코 포파와 시를 통해 만나고 있었는데, 인택 형을 만나고 와서 호기에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인택 형을 존경하고 형이 하시는 말씀이 거짓이 아닌데도 감흥이 크지 않아서, 형의 말씀을 가볍게 보듯 햇살에 옷을 벗어버리는 나그네가 되어 새로운 독도법을 안쪽에 그린 새 옷을 입는 시를 썼네.

그리고 어느덧 십여 년이 흐른 지금, 어렸을 적 산소 보던에서 뛰어 내려와 옆구리를 뿔로 받은 흰 양으로 화하셨던 스승께서 그대와 나를 나란히 보낸 빛을 찾아 떠나온 이 길에서, 이젠 당연한 듯이 나와 나의 어머니가 되고 또 하나의 나와 나의 아버지를 죽인 자리에 의붓아버지가 되어 나를 대하는 그대를 보며, 십여 년 전 인택 형을 대할 때 또 한 겹의 가짜 인택 형이 되어 나를 대하던 그대에게, 당시의 은교처럼 자신의 빛을 찾아 길을 가는 수많은 소년과 소녀와 청년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자 달린 외투가 되어 덮여 있는 그대에게, 이젠 그만 벌거벗은 그대의 비루한 몸뚱이를 감추고 그대가 갈 길로 가라고 말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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