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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나시족의 '차'글자 가운데 '레'로 읽히는 '땅젖'글자. 하늘과 땅의 한 가운데 차를 그려 넣어 그 어울림을 생각하게 만드는 '라히' 사람들의 상형문자인 '차'(茶), 그들에게 차는 하늘과 땅을 두고 맹세하는 약속의 상징이기도 하다.

히말라야의 동쪽 그림자라 불리는 윈난성(雲南城)의 리장(麗江), 그곳은 소수민족 라희의 삶터다. 허나 날마다 봄날인 이곳이 그들의 평화로운 삶터로 되는 데는 나름대로 아픔이 있었다.

 

먼 옛날, 그러니까 아마도 그들이 이 땅에 정착할 무렵, 이곳에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있었다. 이른바 검은 물’(黑水)에 기대어 살던 검은 라히흰 물(白水)에 기대어 살던 흰 라히가 일으킨 흑백대전이 바로 그것이었다.

 

전쟁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주검이 쌓여 산을 이루고 피가 흘러 내를 이루었음에도 전쟁의 승패는 갈리지 않았다. 마침내 검은 라히가 승리를 거두었지만, 이 전쟁의 결과 라히족은 저절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질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상황은 원()왕조 때 완성된 그들의 음악인 펑스시리’(퐁쉬쇠리, 崩時細哩)에 잘 나타나 있다. 5악장인 삿좌찌’(피로 물든 냇물)‘ 6악장인 무뮈우‘(천년의 울음)은 서글픈 곡조와 더불어 그 전쟁의 참혹함을 묘사하고 있다. 또 마지막 악장 아리리찌베르‘(원혼을 달래어 보냄)은 이 전쟁의 결과가 남은 사람보다 보낸 사람이 많았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허나 결론은 서곡인 제1악장 ’(땅울음)이다. 피리로 연주되는 이 곡은 안식의 노래이자 땅울음의 마당이며 노인의 분장을 한 역사신()’의 이야기인데, 이 악장의 주제는 평화다.

 

라히의 문화와 역사는 바로 이 전쟁에 대한 철저한 반성을 통해 이루어진 슬픈 열매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그들은 이 전쟁에 대한 반성을 통해 모든 싸움을 가장 큰 죄악으로 간주했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대지에서 가장 평화로운 문화를 가꾸어 왔다.

 

심지어 쿠빌라이의 수십만 대군이 리장을 덮칠 때에도 이들은 무기를 들지 않았다. 손에 악기를 든 노인들이 앞선 라히들은 몽골의 대군 앞에서 무심하게 평화의 노래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물론 전쟁이 가져오는 비인류적인 참혹함이 담긴 노래를 연주했고, 이 노래에 마음이 움직인 몽골의 대군은 그들의 땅을 빼앗았지만 감히 그들의 목숨을 다치게 하지는 못했다.

 

이들이 전쟁에서 죽어간 영혼을 위로하고 함께 평화를 약속하던 자리, 그 자리에서 약속의 신표가 된 것은 바로 였다. 아니 이때의 이름은 차가 아니라 였다. 즉 그것은 서로의 생각을 비우자는 비움이라는 이름의 차였다.

 

이 차를 마시면서 그들은 아리리’(밝은 이를 노래함)를 불렀다. 그래서 그 노래에는 후회의 한이 맺혔고 꿈과 희망이 담겼다. 허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목숨보다 소중한 상생과 공존의 약속이었다. 그들에게 차는 그런 약속의 상징이었다. 사람의 마음에 묻은 모든 독소를 씻어내고 부질없는 욕망을 비워내는 감로수였다.

 

오늘날인들 무엇이 그리 다를까. 차는 여전히 뜨거운 욕망을 비워내고 자존망대를 씻어내는 시원함이 아니겠는가. 서로가 낮추어 꽃이 아니요 줄기가 아니며 뿌리를 바라보는 눈길이 바로 차에 담긴 마음씨가 아닐 것인가? 어떤 이가 말하길 나무의 키에 견주어 뿌리가 가장 깊이 들어가는 것이 차나무라고 하니, 이 또한 참선에 드는 이가 웃으며 돌아볼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잎을 우려마시며 뿌리를 생각하는 물건, 그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을라치면 옛 스승 이르시길 차나 마셔 보시게喫茶去, “차나 한 잔 하고 가라는 문법상으로 잘못된 번역이다) 하셨으리니, 차를 마시는 이, 늘 그 마음 돌이켜 살림밝음을 얻으라는 가르침 아니랴.

 스승의 말씀 <차를 마시고 마음은 내리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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