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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은 관세음보살의 경전입니다.

관세음보살의 경전으로는 매우 유명한 관음경觀音經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야심경도 관세음보살의 경전입니다. 관세음보살을 줄여서 관음보살이라고도 부르는데, 이때 보살이라는 말은 부처님에 버금가는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관음경은 독립된 경전이 아니라 법화경의 일부입니다. 법화경을 번역한 사람은 구마라습 삼장鳩摩羅什三藏인데, 그는 관세음보살이라고 번역했습니다. 하지만 반야심경을 번역한 현장 삼장玄裝三藏은 경전의 첫머리에서도 볼 수 있듯이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관세음보살도 관자재보살도 원어인 산스크리트는 똑같은데 역자가 다르기 때문에 표기가 다르게 되었을 뿐입니다. 따라서 반야심경관음경과 똑같이 관세음보살의 경전인 것입니다.

그럼 관세음보살은 어떤 분일까요?

관음觀音이라는 글자만을 놓고 보면 그 의미가 왠지 기묘하게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소리()는 듣는 것()이지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관음이라고 하는 것일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관세음보살은 우리와 같은 불교 수행자를 도와주는 보살입니다. 우리는 번뇌로 가득 찬 이 차안에서 깨달음의 피안으로 건너가고자 강을 헤엄쳐서 건너는 중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힘이 달리는 미약한 범부이므로 도중에 물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물에 빠졌을 때 구제의 손길을 흔쾌히 내밀어주는 이가 바로 관세음보살인 것입니다.

그래서 관세음보살은 소리를 가만히 듣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들이 관세음보살님, 제발 살려주세요.” 하며 구조를 요청하는 소리(이것이 나무관세음보살의 의미입니다만)를 듣고 나서 달려오면 이미 때는 늦고 맙니다. 음파의 속도는 더디기 때문입니다. 음파는 1초에 340미터 정도의 속도밖에 안 됩니다.

그런 까닭에 관세음보살은 우리 주변을 항상 주의깊게 관찰하고 계십니다. 빛은 1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 정도 도는 속도, 30만 킬로미터의 속도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밤하늘에서 벌어지는 불꽃놀이를 상상해보십시오.

하는 소리를 듣고 나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어느 샌가 불꽃의 화려함은 사라져버린 뒤입니다. 불꽃놀이를 제대로 즐기려면 하는 소리가 들리기 전부터 가만히 밤하늘을 관찰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관세음보살은 이처럼 우리들이 물에 빠져서 살려주세요.” 하며 구조 신호를 보내기 전부터 가만히 우리들을 관찰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관세음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관찰만 하고 있다면 너무 냉정한 처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예를 들어 내 자식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해 몸부림치고 있다면 절대로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구조의 손길을 내밀게 됩니다.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놀림을 받는 눈치면 이내 아이를 감싸려드는데 이러면 아이는 응석받이가 되고 맙니다. 괴로울 수밖에 없을 때는 단단히 괴롭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상책입니다. 애처롭고 가엾게 여기면서 그저 가만히 지켜봐주는 것이 진정한 애정입니다.

실은 이것이 관자재觀自在의 뜻입니다. 정말로 구원이 필요할 때까지 가만히 자재롭게 관찰하고 계시는 분이 관세음보살인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관자재와 관세음이 같은 의미가 되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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