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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불교와 문화]  페이융의 알기 쉬운 『금강경』 읽기
이번 호부터 시작하는 <페이융의 알기 쉬운 『금강경』 읽기> 코너에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불경 연구가인 페이융이 불교 경전, 그 중에서도  『금강경』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적으로 해석한 책,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유노 북스 刊, 2016) 중에서 한 편씩 발췌해 소개한다.

『금강경』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어느 날 부처가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더없이 평범하기만 하다. 다른 불경에서는 늘 부처가 신비한 모습으로 등장하 지만, 『금강경』에서 부처는 평범함 그 자체다. 부처가 우리네와 마찬가지로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다. 사람은 땅을 벗어날 수 없고, 두 곳 또는 그 이상의 장소에 동시에 있을 수도 없 다. 그러므로 황제든 평민이든, 부자든 빈자든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 이 순간 나는 내 방에서 글을 쓰고 있다. 이 순간 나는 기차에서 창밖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이 순간 나는 사무실에서…. 사람의 인생은 사실 무수히 많은 이런 조각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그 조각들 은 모두 어떤 자리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거나, 무언가를 하고 있으며, 어떤 표 정을 짓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초조해하는 것은 ‘이 순간 이 자리’에 있지만, 그 순간과 그 자리 에서 편안히 머물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이 순간 이 자리에서 편히 머 물 수 있을까? 첫째,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한다. 무언가를 기다리지 말고 곧바로 해야 한다. 둘째, 이 순간 이 자리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나무 책상 위의 나 이테, 기차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집들, 사무실 안의 컴퓨터 자판 두드리는 소리 처럼 작은 것들이 모두 제각각의 아름다움을 지니고 사람을 감동시킬 수 있다. 부처는 기수급고독원에서 제자 1,250명과 함께 있었다. 1,250명은 아주 많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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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 아마 그 순간 인도 어딘가의 한 대청이 몹시 시끌시끌했을 것이다. 하지만 『금강경』의 첫머리는 평범하고 고요하기만 하다. 아무런 소음도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부처가 그곳에 평온하게 앉아 있고 안온한 분위기가 흘러넘치는 분위기를 떠올리게 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그 순간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 부처와 그의 제자들이 어떻게 기수급고독원에 머물게 되었을까? 부처와 제자들이 왕사성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정해진 거처 없이 숲을 따라다 니며 숲 속에서 자고, 심지어 길가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한 부자가 그들을 보 고 왠지 모르게 이끌려 그들을 신뢰하게 되었다. 그는 그들을 위해 60곳에 숙소 를 짓고 그들을 불러 식사를 대접하기도 했다. 이 부자의 매형인 급고독장자가 이 소식을 듣고 이른 아침 부처를 만나러 갔다. 그런데 부처가 그를 보자마자 그 를 수달다라고 불렀다. 급고독장자가 부처에게 “어젯밤은 편안히 주무셨습니까?”라고 문안을 드리자 부처가 대답했다. “마음이 고요하여 언제나 잘 잔다네.” 부처가 그 자리에서 그에게 설법을 해 이 세상 모든 것이 태어나면 반드시 죽 는다는 이치를 알려주었다. 급고독장자가 그것을 다 듣고 감동해 부처와 제자들을 위해 우기에도 기거할 수 있는 거처를 지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는 사위성 기타태자 소유의 숲에서 적 합한 장소를 발견하고 기타태자에게 그 땅을 양도할 수 없는지 물었다. 태자가 “이 숲을 가득 덮을 만큼”의 황금을 달라고 하자 급고독장자가 금화 10 만 개를 실어다가 그 숲에 깔았는데 문 앞의 작을 땅을 덮지 못했다. 그러자 기타 태자가 “이 땅은 제가 보시하겠습니다”라고 했다. 급고독장자가 그 숲에 정사(精 舍)를 짓고 부처에게 물었다. “세존이시여, 이 기원(祇園)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겠습니까?” 부처가 대답했다. “과거, 미래, 현재에 사방의 비구들에게 내어주어 사용하도록 하라.” 석가모니가 성불한 뒤 각지를 돌아다니며 불법을 널리 전파했는데, 특히 왕사 성(마갈타국 도읍의 죽림정사와 사위성 교살라국의 도읍)의 기원에서 주로 설법을 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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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사위성의 기원이 바로 『금강경』에 나오는 기수급고독원이다. 수보리를 비롯한 제자들은 기원에서 부처의 설법을 들었고, 그 내용이 바로 『금강경』에 나온다. 당 나라 때 현장이 인도에 갔을 때도 이 기원의 유적을 방문했다.
어떻게 하면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초조해하지 않고 편히 머물 수 있을까? 첫째, 지금 하고 싶은 일을 바로 하라. 둘째, 지금 이 순간의 아름다움을 느껴라.
 해설
『금강경』은 어떤 경전인가
『금강경』은 무슨 이야기를 담고 있나. 『금강경』의 정식 제목은 『능단금강반야파라 밀경(能斷金剛般若波羅蜜經)』이다. 불교에서 아주 중요한 경전이며, 불교학의 근본이 되는 교법을 담고 있다. 이 경전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금강(金剛, vajra)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꿰뚫을 수 있는 빠 르고 맹렬한 번개라는 뜻이고, 또 하나는 가장 단단한 암석인 다이아몬드라는 뜻 이다. 한마디로 금강경은 온갖 번뇌가 찾아와도 빠른 번개가 내리꽂히듯 깨뜨려 날려버릴 수 있으며, 그렇게 하고 나면 마음이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져서 그 어 떤 번뇌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번개처럼 단숨에 갖가지 현상의 진정한 모습을 꿰뚫어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단단한 다이아몬드처럼 어떤 사물과 관념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금강경』이 제시하는 해답은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이다.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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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밀’이란 ‘피안에 도달한다’는 뜻이고, ‘반야’란 지혜를 의미한다. ‘반야바라밀’이 란 ‘피안에 도달하는 지혜’다. 즉 『금강경』은 피안에 도달하는 지혜를 통해 세상의 온갖 헛되고 망령된 것들을 없애고 최종적인 해탈을 얻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금강경』은 ‘반야바라밀’, 즉 지혜에 관한 책이다. 그런데 왜 불교에서는 지혜라 는 말을 놔두고 굳이 ‘반야’라고 할까?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가 우리가 일반적으 로 알고 있는 지혜와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생활의 지혜는 불교 관점에서 보면 그저 똑똑함이나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일 뿐이다.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승진할 수 있는지 알려주는 책들도 ‘지혜’를 알려준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것은 사실 지 혜가 아니라 똑똑함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지혜란 세상의 모든 도리를 알고, 세상의 모든 것에 집착하지 않으며, 오로지 최고의 정신적인 경지만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 세상의 무언가에 연연하지 않으며, 오직 어떻게 피안에 도달할 수 있는가에만 관심을 갖는다. 피 안에 도달하는 법을 깨닫고 나면 잡다한 세상사는 근심할 가치도 없는 하찮은 것 들임을 알게 될 것이다.
현대인은 왜 『금강경』을 읽어야 하나
『금강경』은 다른 불경에 비해 분량도 짧고 글도 단순하고 쉽다. 화려한 상상과 신 비한 은유, 복잡한 대구가 이어지는 다른 불경들과 달리 『금강경』은 평범한 문답 록이다. 그러나 이 평범한 책의 영향력은 실로 막강하다. 이 책은 세상에 나온 뒤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영혼을 깨달음과 자유의 길로 인도했다. 『금강경』을 읽지 않고 『금강경』이 알려주는 길을 깨닫지 못하고 실천하지 않으 면 진정한 불교도가 될 수 없다. 불교를 배우고 불법을 수행함에 있어서 『금강경』 은 필수 과목이다. 하지만 성불을 목표로 하지 않는 일반인들에게는 『금강경』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공(空)’, ‘출세간(出世間)’ 등 심오한 불교학의 개념에 대해 특별히 사색하지 않고 그저 보통 책을 읽듯 『금강경』을 읽거나 그저 대충 훑어본다 해도, 이 책에서 뜻 밖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이 책이 불교의 기본 교법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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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 난해하거나 우리와 동떨어진 경전이 아니며, 한 구절 한 구절 우리네 잡다한 인생에 대해 자분자분 얘기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경』은 우리의 사유 방식을 바꾼다. 『금강경』에 담긴 석가모니의 말은 결론 식 대답이 아니라 질문식 대답이다. 대답을 하면서도 계속 질문해서 질문한 사람 을 생각하게 한다. 『금강경』에 담긴 부처의 말에 관심이 없는 사람도 그 속에 담 긴 질문식 사유 방식을 배운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배움이다. 살면서 항상 질문하 고 시시때때로 돌이켜 생각한다면 점점 지혜로워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 다. 질문을 하면 통찰력을 기를 수 있고, 무엇을 보든 경솔하게 결론을 내리지 않 을 수 있다. 『금강경』은 더 성공하고 더 건강하게 만든다. 물론 『금강경』을 읽는다고 바로 돈 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것도, 더 좋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것도,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금강경』을 그저 가볍게 읽는 것만으로 기존의 습관적 인 사유 방식에서 벗어나 더 넓게 생각하게 되고, 마음이 훨씬 온화해지면, 이런 변화는 결국 생활까지 바꿔놓는다. 그러므로 『금강경』을 읽으며 사회에서 더 성공 하고, 일이 더 순조로워지며, 몸이 더 건강해진다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강경』을 읽으며 실패를 맞닥뜨렸을 때 우울해지지 않 을 수 있다는 점이다. 눈앞에 보이는 실패가 그저 가상이고 게임이라는 것을 알 고 있으므로 가상 때문에 쓰러지지 않을 수 있고, 반대로 성공했을 때도 성공이 가상이자 게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게임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다. 이런 힘은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준다. 『금강경』은 속세도, 언어의 세계도 아닌 이 세상 밖의 다른 세상, 언어 밖의 다 른 세상을 가리키고 있다. 그 세상은 아인슈타인이 말한 오묘함이자, 눈에 보이 지도 않고 경험하지도 못한 오묘함이다. 『금강경』은 마법의 주문도 아니고 신화 도 아니며, 진실한 모습을 알려주는 안내서다. 『금강경』을 읽는 것은 학문이 아니라 수행이다. 마음을 빠르고 맹렬한 번개나 단단한 다이아몬드로 만들어 어떤 형태와 관념에도 유혹당하지 않고 번뇌하지 않으며 분명하게 들여다보고 본질을 꿰뚫어보게 만든다. 『금강경』을 읽는다면, 이 세상의 모든 형태와 관념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본래 모습 안에서 평온하게 머물며 생명 자체의 희열을 느끼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