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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과일 여기 주머니 안에 한 존재가 들어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나누어 준 주머니 안에도 각각의 다른 존재들이 하나씩 들어 있습니다. 각각의 존재가 어느 별에서 왔는지 모릅니다만, 모두 숨을 쉬며 우리들의 손길을 기다립니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왼손을 넣고 가만히 손끝을 대어 봅니다. 그리고 마치 나의 팔위를 걷던 개미처럼 표면을 어루만지며 느껴 봅니다. 아래서 위로 올려 보기도 하고 위에서 굽어보며 그 대지의 표면 안은 어떤지 느껴 봅니다. 존재는 아무런 선입견 없이 과거에 내가 본 무엇이라고 판단하지 말고, 낯선 마음으로 처음 보는 존재로 여기며, 한 손의 촉각으로 느끼며, 동시에 다른 한 손으로 느낌을 그려 봅니다.

모두 그리고 나서 주머니를 열면 주머니 속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 과일입니다. 과일은 씨를 담고 있습니다. 과일의 어제로 거슬러 가 볼까요? 나무에 열매로 맺기 전 꽃이 필 때에, 그리고 잎이 피기 전, 꽃이 피기도 전으로, 나무가 아주 어렸을 적으로, 그리고 씨앗이 움을 틔우던 때로, 씨를 담고 있던 잘 익은 과일이었을 적으로.

가을 안개와 서늘한 공기와 대지가 다른 빛깔로 느껴지도록 비추는, 가을 햇살아래 과일이 잘 익을 때, 새가 와서 달콤한 과일을 먹습니다. 그리고 씨를 먼 이곳으로 와서 땅에 떨어뜨립니다. 무한소인 가 스스로를 펼쳐 확장하려는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씨앗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제부터 씨를 씨앗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땅에 떨어진 씨앗이 차가운 바람 속에서 하얀 눈에 덮인 채 겨울을 보내면, 하늘과 땅에서 온기가 돌고 씨앗은 가만히 기억을 열려는 마음이 움직입니다. 따뜻한 봄 햇살이 서리를 걷어내고, 내리는 봄비로 젖어 촉촉한 땅에서는 씨앗이 움을 틔웁니다. 움을 틔운 새싹이 잎을 피우며 자라고 꽃이 피며 열매를 맺습니다. 내 고향에서는 덜 익은 열매를 새파랗다고 부릅니다. 또 새파랗다는 말은 마음이 덜 자란 사람에게 애송이라는 말로 달리 부르기도 합니다. 새파란 열매를 그냥 먹으면 배가 아파서 물에 익혀 먹어야 합니다. 열매가 뜨거운 여름 햇살을 받으며 우거지는 이파리들 속에서 살이 찝니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되면 열매가 탐스럽게 익어서 드디어 하늘이 주시는 선물 과일입니다. 어쩌면 그리스 신화 속 꽃의 요정 클로리스가 봄의 여신 플로라로 화하는 것과도 비교할 만합니다. 봄이라는 의미의 보티첼리의 그림 프리마벨라에는 서풍의 신 제피로스로부터 벗어나는 클로리스가, 온갖 꽃을 피우며 플로라로 변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잘 익은 과일을 새가 먹고 멀리에 떨어뜨렸던 씨는 무한소의 모양으로 응축된 것입니다. 시간은 그 속에 잠들고 새로운 곳에서 모양을 펼칠 새로운 존재의 기억입니다.

사과가 많이 나는 내 고향에서는 새파랗던 어린 열매가 자라서 잘 익은, 사과를 두 손으로 잡고 힘을 주어 쪼개어 나누어 먹으며 놀았습니다. 그리고 잘 익은 단 맛과 함께 사과를 잘 쪼개는 사람은 연애를 잘 한다.’며 즐거워합니다. 연애를 잘 한다는 말은 사과를 잘 쪼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쪼개어 나눠 먹으면 크기는 반쪽이지만 마음이 크기는 통째로 확장합니다. 하나의 과일이 둘이 될 때 두 사람의 열린 마음은 하나입니다.

과일은 하늘과 땅이 주시는 완전한 통샘이(통째)의 모양입니다. 가만히 집착하지 말고 존재로 느끼며 그려보면 완전한 세계가 담겨 있는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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