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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한 철

haeoreum 2018. 5. 14. 19:24

다랑쉬 오름에서 바라본 성산, 바로 앞에 아끈다랑쉬와 오름들이 성산을 거쳐 바다로 향한다.

기억 한 철

 

 

 

손가락 (季節에게)

 

너는 그때의 순간을 불러내고

그 기억을 조심스러우면서도

단호하게 짓누른다

덕분에 소리는 귀를 먹고

냄새는 코를 삼킨다

눈을 찌른 색깔은 째진

그곳에 찬물을 길어다

채운다

 

 

기억 (찌름에게)

 

욕망의 변주여

네가 가리고 선 슬픔이 배어나와

또 다른 기억을 지목했다

피하는 대신 내가 네 안으로

배어 들어간다

이 완벽해지는 상황에서

너는 어느 편이냐

 

 

연민 (慾望에게)

 

너를 어느 쪽에도 놓아두지 않았다

여목櫔木의 꽃이 떠오른 두무소 물빛이

한시도 멈추지 않듯,

地軸마저 거역하고 기우는

내 안에서 너는 중력의 부름을 따라

소리 없이 흔들리며 쏟아져 가라

 

 

浮石 (쏟아짐에게)

 

내년 오월이면 마저 지우지 못한

粉紅을 다시 피우겠지만

늙은 사과나무는 선승처럼

제 살갗에 버짐을 또 한 겹 일군다

피고 지는 지표를 담담하게 바라볼 뿐

봉황산 뜬 돌은 움직임도 멈춤도

그림자처럼 없다

 

 

 

붓꽃 (觀照에게)

 

나지막한 네 독백이 안개에 섞일 때

허공에서 쇠 삽 하나 내려와

꽃 진 밑 둥을 힘껏 찍었다

紫色의 계절이 잘린 손가락 속에서

하얗게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