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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민족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중국 윈난성, 각 민족들의 정신적 대동맥이라 할 그들의 신화도 그만큼 다양하다. 라후족(拉祜族)의 신화도 그 가운데 하나, 그 한 토막을 이야기할까 한다.

 

이것은 라후족의 주요한 조상신인 아싸와 관련된 신화, 아싸는 인간에게 자연을 이용하는 법을 가르쳤다는 라후족의 신이면서, 이 가르침을 통해 자연에 얽힌 자신의 한을 풀어간 톡특한 신이기도 하다.

 

조롱박 덩굴이 끊어졌다네. 조롱박이 굴러 달아났다네. ……아싸가 이를 좇아서 갈대숲에 갔다네. 갈대가 조롱박을 본적이 없다고 하네. 아싸는 화가 나서 말했다네. “사람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만 기다려라. 갈대를 베어 담을 엮게 할 테니.”

 

아싸는 조롱박을 찾아 금죽(金竹) 숲까지 좇아갔다네. 금죽(金竹)도 조롱박을 본적이 없다고 하네. 아싸는 화가 나서 말했다네. “인간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만 기다려라. 금죽(金竹)을 베어 버선을 만들게 할 테니.”

 

아싸는 조롱박을 찾아 쪽숲까지 좇아갔다네. 쪽도 본적이 없다고 답하네. 아싸는 화가 나서 말했다네. “인간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만 기다려라. 너를 이용해 염색 천을 만들게 할 테니.”

 

아싸는 싸리숲까지 좇아갔네. 싸리도 본적이 없다고 답하네. 아싸는 화가 나서 말했네. “인간이 세상에 나올 때까지만 기다려라. 너를 이용해 바구니를 엮고 광주리를 엮게 만들 테니.”

 

아싸는 황밤나무숲까지 좇아갔다네. 황밤나무도 본적이 없다고 답하네. 아싸는 화가 나서 말했다네. “인간이 나올 때까지만 기다려라. 너를 이용해 호미와 도끼 자루를 만들게 할 테니.”

 

신화치고는 너무 무서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우리가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이 모두 아싸라 불리는 신의 원수를 대신 갚고 있는 것이라니 말이다. 참으로 스스로의 행위가 모두 언젠가 이미 짜여진 남의 한풀이일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그리고 아싸는 바로 그 언젠가의 자신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지혜라 부르는 것을 일러 알음알이라 하지 않을 도리가 없으며, 의지와 믿음을 일러 무명의 업보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라 아니할 도리가 없다. 우리의 욕망이 죄다 그런 것이 아니라 어찌 말 할 것인가. 그러면서 이들의 신화는 우리에게 늘 묻고 있다. ‘그대는 이제 아싸의 굴레를 벗어났는가라고 말이다.

 

참선의 길에서는 지고 가는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으라”(放下着)고 했다. 아싸의 신화도 그것을 말하고 있다. 아싸의 저주를 풀려면 한 걸음 물러나 고개를 숙이고 차 한 잔을 마시라고 했다. 그러면 눈앞에 다가오는 사람과 사물을 아싸의 눈이 아니라 스스로의 몸으로 다시 만나라고 했다. 늘 새로운 몸이 되어 새로운 만남을 기다리며 감사하는 마음이 차에 담긴 다음일 터, 그 마음이 곧 참선으로 드는 길은 아닐지, 아무튼 차를 마실 때면 많은 분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차의 여신 이우, 뱀의 모습을 했으나 그 마음이 그리도 아름다웠던 그녀의 차를 마시려면 아무래도 어제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과 형상으로 사물을 만나지 않으려는, 사천왕문을 지날 때의 작은 용기 정도는 필요하지 않을까.


스승의 말씀 <차를 마시고 마음은 내리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