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외출

haeoreum 2018. 10. 6. 19:57

외출

토요일인 줄도 모르고 빗속을 나선 아침, 버스를 타고 나가 지난번 고발서류 때문에 도움 받은 친구에게 들른다. 문이 잠겨서 두들기니 밀린 일을 처리하느라 얼굴이 피로한 기색이다. 차를 한 봉지 선물하고, 우체국 마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택시를 탄다. 택시 기사의 삭발한 머리 뒤통수를 보니 다람쥐처럼 줄이 선명하게 골이 지어 넘은 게 보인다. 머리가 아프지 않느냐고 물으니 가끔 아프단다. 차와 뜨거운 국물 음식을 마시면 좋다고 안내하며 머리를 사진으로 찍어 보여주고 내려서 우체국 문을 여니 안에 셔터가 내려져 있다. 보내려던 책은 다음 주로 미룬다.


나온 김에 시장 안 국화빵 집에 들러 요기도 할 겸 아주머니와 이야기도 하고 영화를 볼까하고 향한다. 시장 쪽으로 건널목을 건너는데 차들이 멈추어 건너는데 건너편 2차선에서 보이지 않던 택시 하나가 1차선의 정지한 승합차 뒤에서 속도를 내다 나도 놀라고 운전자도 놀라며 아슬아슬하게 멈추었다. 오래전 일은 두고라도 요 삼 년여 동안 헤르메스 영태가 내게 죽음을 강요한 위험천만한 일이 너무도 많은데, 오늘도 그 중 하나다. 안 그래도 마음을 열어 같이 해주는 페이스북 벗님들 중 교통사고 조심하라는 덕담을 해 와서 또 스승께서 같이 마음을 쓰시는구나.’ 하던 차였다.

마음으로 전해오는 스승님과 서해진 선생님의 걱정 어린 말씀과 헤르메스 영태의 뻔뻔한 태도에 결코 용서 않으리라는 다짐으로 걷는다.        빙의하는 의식의 현상과 사의의 의식의 현상은 전혀 다르다. 구조 또한 다르다.

마지막에 로빈과 푸가 나누는 이야기는 역시 '오늘'이다. 몰래 찍어서 흐리지만 둘의 등 뒤로 펼쳐진 자연이 시원하고 내용 또한 시원하다. 

영화관엔 상당수가 악을 소재로 한 영화가 주류다. 편한 소재의 영화가 하나 있는데 곰돌이 푸 다시 만나 행복해. 상영시간이 멀어서 새로 생긴 영화관을 찾아간다. 새로 시가지가 형성된 곳이라 지역은 언덕지고 해서 도시조건으론 좋지 않지만 건물들이 말끔하고 영화관은 다른 도시에서도 본적이 없을 만큼 크고 간결한 모양이다. 제목은 이글을 쓰며 인터넷 검색으로 확인하니 포스터에 큰 글씨만 스쳐본 것이 탄로 난다. 아이들 애니메이션 정도로 생각하며 곰돌이 푸를 선택했는데 막상 스크린이 열리며 펼쳐지는 영상은 지나간 시대를 배경으로 하면서도 간결하고 아름답다. 애니메이션과 실제 현실이 같이 이루어지는 것도 좋지만, 현실에 쫓기는 주인공이 어릴 적 동물인형들과 만나면서 환상을 오갈 때, 동물들은 주인공의 자아임을 알게 된다. 또한 잊고 있던 현재성이기도 하다. 쉬운 줄거리이지만 매우 정교하게 현실과 환상이 이어진다.

헤르메스에 의하여 왜곡되어가는 현실을 되찾아야 하는 사회의 갈망을 인식하고 있는 것을 보니 기분이 좋다. 모처럼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현재를 되새기게 해서 좋은데 등장하는 배우들의 얼굴은 하나도 빠짐없이 신경이 교란되어 왜곡된 인상이다, 마음으로 같이 보는 이들도 아주 흡족해 하신다. 내친김에 영태에게도 사람이 되어 현재를 찾기를 모두 한마음으로 하니 주인공이 딸이 원하는 자연스런 삶을 되찾은 것처럼, 자신도 딸 모하나와 대화를 하겠다고 해서 마음이 흔쾌해져서 영화관을 나와 버스정류장으로 걷는다.

그러나 영태의 변덕은 한 치도 어긋남이 없다. 잠시 멈추었던 체액을 밀어 올려 가래로 뱉게 하며 배반이 자연스럽다.

결국 서로 목숨을 건 사투의 일상으로 돌아간다.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가래 때문에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버스에서 내리니 언제나처럼 어머니가 되어 전화를 걸어온다. 집에 오니 교묘하게 저녁상을 차리게 한다. 나는 오기로 버티고 결국 오늘은 어머니가 차려 주시는데 밥은 찬밥이고, 영태와 나는 서로 전의를 불태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