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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haeoreum 2018. 9. 18. 07:50

커피 이야기

 

 

커피콩을 시루에 담고 이틀 동안 찐다. 그리고 채반에 담아 새벽이슬을 맞히고 햇볕에 말리기를 여러 날 째, 이어서 짚과 함께 삼베자루에 담아 서늘한 곳에 걸어 발효시킨다.’

애초 생각은 일이 년은 족히 묵힐 요량이었는데, 한 철밖에 안되었지만 해 바뀐 김에 열어보니 볶지 않았는데도 제법 향이 난다. 내친김에 한 줌 꺼내어 달걀 부치는 작은 프라이팬에 넣고 불을 지핀다. 서서히 볶아지며 콩 속의 기름이 밖으로 배어나와 향기와 함께 진한 갈색의 윤이 난다. 이번에는 볶아진 원두를 깨소금 빻는 작은 확에다 빻아 잔에 옮겨담고 뜨거운 물을 붓는다.’

내가 사는 시골마을 면소재지엔 시외버스정류소가 있고 거기엔 서너 평 남짓한 조그만 커피집이 딸려있다. 이 이야기는 오며 가며 친해진 커피집 주인에게서 얻어온 커피콩을, 나만의 방식으로 마시는 커피 이야기이다.

이내 커피향이 피어오르며 대부분의 가루가 물밑으로 가라앉았다. 전문적인 도구는 없지만 그래도 혼자서 폼 잡기에는 일단 성공인 것 같다. 이 커피는 말라위 트리플 A인데 보통의 방법대로라면 신맛이 난다. 하지만 이렇게 익힌 커피는 강하게 볶았는데도 박하 향처럼 화한 단맛이 입안에 퍼지고, 그 느낌은 귀부인의 품격처럼 부드러우면서도 풍부하다.’

다 마신 커피 잔을 도미니카의 농부들처럼 탁자에 엎고 커피 점을 친다. 탁자에 쏟아진 커피찌꺼기의 모양이 약간 일그러지고 한쪽은 불룩하게 튀어 나왔다.

점괘는 이렇다.

튀어나온 부분은 일상에서 욕심을 부리고 있었군. 일그러진 부분은 식구들에게 신경을 덜 쓰고 있었어.’

새해 아침 커피는 나에게 넘치는 욕심을 덜어내고 빈자리를 따스한 마음으로 채우라고 일러준다.

 

이글은 십여 년 전 전통의 방식으로 커피농사를 짓는 도미니카 농부들에 대해 쓴 줄리아 알바레스의 에세이 제목 커피 이야기를 그대로 썼고, 그림은 글에 덧붙인 벨끼스 라미레스의 판화를 닮도록 파고 찍은 것이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마시는 풍부하고 깊은 맛의 카페씨또를 상상하면서.

 (2013년 4월 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