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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유럽에서 있었던 일이다. 한창 인기를 끌던 커피의 유해성을 두고 논란이 일자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 3세는 한 살인범에게 죽을 때까지 날마다 커피를 마시도록 하고, 다른 살인범은 차를 마시도록 했다. 누가 먼저 죽나 비교해 커피의 독성을 증명하기 위해서였다. 이를 감독하기 위해 두 명의 의사가 임명되었는데 이 긴 실험 동안 가장 먼저 죽은 사람은 두 의사였다. 다음으로는 1792년 왕이 암살되었고, 그 뒤 수년이 지나 두 살인범 중 한 사람이 먼저 죽었다. 83세였는데 차를 마셔온 쪽이었다.“                       https://news.v.daum.net/v/20180917150057346?d=y#none

빙의를 풀어준다고 페이스북 메신저를 통해 거짓 안내하며 자신의 가족사진을 보여주며 조롱하는 김영태 와의 메신저 대화장면

스승을 비롯하여 모든 이들이 김영태 자신의 범행이 근래 3년여 동안의 정진웅과 정진웅 집안에 행한 범죄행위에 따라 모두 드러났으니 사법기관에 자수하라고 권해도 듣지않고 이와 같이 자신의 행위를 비현실적 방법과 나와 가족 및 세상사람들에게 빙의행위를 통해 경험하도록 하며 스스로를 고백하는 것이라며 오만한 말과 지속적인 비행을 일삼는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에게 자수를 권하러 갔더니 협박한다고 고발당하고 죄목 중에 추가된 것이 아버지를 죽이고 있을 때, 전화로 중지하라며 욕을 했더니 빙의가 형법조항에 단속근거가 없다며 협박범죄자로 1심에서 확정되었다. 항소재판을 준비 중인데 국선변호인의 의견으로는 김영태가 빙의행위로 아버지를 죽일 때, 실질적 증거와 상황을 입증할 증인이 여러 분인데도 욕설은 상대를 가해하는 행위이므로 죄에 해당한단다. 그리고 상대가 아버지를 죽인 행위는 따로 고발해야 한단다. 위파사나에는 열 가지 不善業 중에 욕설이 해당되니 죄는 죄다. 그러나 빙의로 기억과 의식을 점유한 채 한시도 떠나지 않고 수년에 걸쳐 욕설과 분노를 신체의 신경과 의식을 교란하며 강요했고, 보는 앞에서 아비와 형제와 자식을 강제로 죽이며, 어미와 아내와 누이들과 딸 등 집안의 여인들의 성신경에 독기를 돌려 욕망을 자극하고 엿보며 음행을 하니, 견디기 힘든 나는 결국 강제된 현실과 신체의 신경과 의식의 강제를 자각하면서도 욕과 화를 내는 상황이 되었다. 누구에게나 하지는 않지만 헤르메스 김영태에게만은 욕과 화로 대응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욕과 화를 내더라도 강제함을 알며 부모와 형제와 자식과 세상 사람들에게 악행을 하는 악마에게 낸 화는 정의의 지평에서 죄가 아니며, 더구나 아비를 죽이지 말라고 한 욕이니 정당방위에 해당 될 테고, 항상 욕을 하며 상대해 달라고 강요하니 피학적 도착장애가 있는 그에겐 욕도 선물이고 즐거움인 것이다.

항소내용을 준비하느라 컴퓨터 앞으로 놓고 책상으로 활용한 차탁위에 차 도구를 펼쳐놓으니 마치 자폐 속에서 표류하는 노래방 구석이 연상된다. 그래도 물을 끓이고 차호에 원미소타 반쪽을 빻아 넣고 찍은 사진을 차호 건너편의 모니터에 열어놓고 보니 명상 중에, 나를 보는 누군가의 뒤에서 보던 내가 떠오른다.

커피도 장 띄우듯 쪄서 새벽이슬을 맞추어 가며 발효과정을 거치니 사향고양이가 몸으로 띄웠다는 루왁이나 계절풍에 쐬어 독기를 뺀다는 무슨 이름의 커피보다 순해서, 도미니카의 농부들처럼 설탕을 듬뿍 넣고 끓였더니 어린 아이도 맛있게 먹더라. 보이차를 마셔온 지 10여년이 넘는다. 잘 발효된 보이차는 김영태의 빙의로 파괴되고 욕망에 찌들었던 나의 심신을 살리고 평생 고민이었던 삶의 이유가 관계라는 것을 알도록 했고, 보이지 않는 스승을 따르며 감각과 의식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가슴안의 제비를 날려 보내며 인당수와 하늘구경도 해보는 호사를 누렸다. 또한 비현실에서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과 이간질 등 열 가지 불선업을 모두 짓지만, 현실에서는 장을 띄워 파는 김영태의 안내로 몇 번을 죽어가며 생지옥도 경험 중이다.

컴퓨터의 뉴스를 여니 마침 커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김영태에게 신경교란을 통해 고문과 생체실험을 긴 기간 동안 당해 보았기에 죄수의 마음을 알겠고, 기경맥이 맑아지며 그 속의 변화를 조금 느끼니 의사의 마음도 이해가 된다. 또한 일시적이지만 커피를 익혀 마셔보고 차를 마시며 심심을 달랜 경험이 있어 차를 마시는 마음과 커피를 마시는 마음도 이해가 된다. 여기서 관찰하던 의사들의 시선이 엿보는 것이었으니 일찍 죽은 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다음으로 생체실험을 교사한 왕이 스스로 죽지못하고 타인에 의해 죽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다음으로 차와 커피의 상태가 어땠는지는 모르지만 둘 다 엿보기가 아닌 현재성의 관찰이었을테니 순서를 따질 일은 아니다. 단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설탕을 듬뿍 넣고 끓인 커피맛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세밀하면서도 넓게 세상을 볼 수 있도록 도와준 차는 평생 벗이다. , 차가 커피만 못해서 조금 일찍 죽을지도 모르지만말이다.

*‘죽을지도 모르지만
김영태가 평소 빙의를 통해 공격을 일삼을 때 시작하면서 하던 말, 수없이 많은 이들을 죽였으니 이젠 자신이 죽을 만도 하고 모두들 동의하지만 여전히 죽기가 싫어 요행수를 바라며 타인에게 대한 침해행위를 버리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