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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최근 3년여의 확인 과정 중 김영태의 자택 방문에 대한 그의 고발에 의한 '협박'사건에 대한 재판부에 제출한 내용입니다. 

 자아(ego) - 욕망 - 집착(아집) - 탐욕의 내부화(자폐) - 정신(자아)분열 정신(자아)착란 - 과대망상(현실에 대한 편집) - 기중독(氣中毒)증상으로 인한 자아의 과도한 발현과, 텔레파시를 이용하여 타인의 신경에 감응하는 최면 반사회적 성격장애(스토킹 및 사이코 패싱) 행위를 합니다. 내부의식에서 감응을 통해 텔레파시(傳言)3 년여 동안 박현 선생님의 초월적 수행력 안에서 서해진, 박송학, 추공 님 등 여러분과 함께 김영태와 소통하고 또한 사이코패스 진단법에 김영태의 행위를 진단하여 총 18개 문항에서 사이코패스 범죄행위를 하는 사람임을 확인 함. 다만 현실에서는 부인하고 대면하는 사법기관의 수사관 등 모든 사람의 기억과 사고를 교묘하게 교란하며 대응하므로, 박현 선생님의 특별자문에 따라 구인과 진술 등 수사를 진행해야 함. 일반의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확인 불가능함.


1. ()는 눈(), (), (), (), ()과 함께 여섯 가지 감각기관 중의 하나입니다. 욕망에 따라 대상에 집착하는 중에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러므로 로 행하는 것 중에, 욕망현상에 따라 타인의 기억과 감각과 사고(의식)를 점유할 수 있습니다.

 

2. 점유하여 일어나는 현상은 자신을 욕망의 과다와 집착으로 인한, 더 확장된 범위를 갈구하고, 세계가 자신의 영역이라는, 스스로 과 같은 초월적 존재로 착각하는 과대망상에 빠집니다.

 

4. 과대망상은 타인들의 현실에 간섭하여 그들의 삶을 대신하려는 행위를 합니다.

 

5. 그 행위는 그들의 감각을 탐닉하고 기억과 지식을 탐하며, 사고하고, 현실화하는 의식을 탐하여 대신하듯 앵무뻐꾹의 현상화, 즉 개개인의 감각과 의식과 생활을 대신하려는 의지 속에서 교란하고, 개개인이 모르는 사이에 삶을 교란합니다.

 

6. 이러한 삶이 교란되는 대상은, 마약이나 술에 중독되어 약물을 흡입하면 신체증상이 증강하는 것처럼, 기공을 통한 신체의 자양력으로 증강한 상태인, 김영태의 자폐 속의 정신분열에 따른 자아의 과다로 이어지며, 무한 확장하여 후천적 서번트 장애현상에 비견할 만큼 초감각적인 동시 다중 자각능력으로, 뇌파(텔레파시)로 다수의 사람들에게 동시에 감응하여, 그들의 기억과 감각기관을 점유하여 교란, 조종을 통하여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관계를 교란합니다.

 

7. 관계의 교란은 좋은 형제”, “가 좋다등의 옛 교과서에 등장했던 이야기처럼, 마음안의 감각기관이며 현상인 의()를 점유하면, 인터넷 연결망처럼, 대상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관계를 따라, 인드라망의 넷트웤을 형성하며, 개인에서 집안과 사회, 국가, 세계 등의 확장된 영역을 동시에 움직이도록 교란합니다.

8. 이는 뇌파의 변화에 따라 세상을 직관하는 (내면에선 초 연결 구조의 확장) 정신수행자의 명상행위의 모양과 닮았지만, 정신수행자가 하는 이와 같은 현상에 따라 자신과 타인에게 이로움을 행하는 것을 보살행이라 하며, 이와 같은 초월적 능력을 터득하고 의 현실(현실의 지평인 초의식계)에서 활약하는 존재를 보살(보디사트바)’이라고 하며 일반적으로 성자로 부릅니다.

 

9. 현실인으로 살면서 보살은 초월적 능력을 눈에 보이지 않게 운용하며 명상상태(삼매) 속에서 마음으로 을 고치거나 아픈 이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등의 이타적인 행위(보살행)를 하는 이들이 실재합니다.

 

10. 자신과 남을 이롭게 하는 초월적 능력을 갖춘 보살의 경지에 이른 이와 달리, 돌연변이 현상으로 일반인의 수준을 넘어선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드라큐라나 마블시리즈의 만화와 영화에 등장하는 초인의 경우인데, 영화 속에서 영웅적인 면모를 보이지만 현실에서는 氣運에 중독되어 욕망하는 욕망과다의 돌연변이에 불과합니다.

 

11. 욕망과 과대망상의 상태에서 움직이는 사람의 현상에 대한 이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삼독(三毒)에 빠져 일어나는 현상, 유식론적 해석

(), (), (). 욕망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세 가지 독()의 과다는 자아의 분열과 확장인 착란현상에서 오는, 비정상적인 자아의 발생으로, 타인의 심리에 영향을 끼치는 아수라의 현상으로, ()의 증대를 가져옵니다.

콤플렉스 속에서 비정상적 정신의 분열과 망상에 이르는 정신분석적 해석

자아(ego) - 욕망 - 집착(아집) - 탐욕의 내부화(자폐) - 정신(자아)분열 정신(자아)착란 - 과대망상(현실에 대한 편집) - 기중독(氣中毒)증상으로 인한 자아의 과도한 발현과, 텔레파시를 이용하여 타인의 신경에 감응하는 최면 반사회적 성격장애(스토킹 및 사이코 패싱) 행위를 합니다. 내부의식에서 감응을 통해 텔레파시(傳言)3 년여 동안 박현 선생님의 초월적 수행력 안에서 서해진, 박송학, 추공 님 등 여러분과 함께 김영태와 소통하고 또한 사이코패스 진단법에 김영태의 행위를 진단하여 총 18개 문항에서 사이코패스 범죄행위를 하는 사람임을 확인 함. 다만 현실에서는 부인하고 대면하는 사법기관의 수사관 등 모든 사람의 기억과 사고를 교묘하게 교란하며 대응하므로, 박현 선생님의 특별자문에 따라 구인과 진술 등 수사를 진행해야 함. 일반의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확인 불가능함. 이 문서를 작성하는 2018618일 현재에도 자수권유를 무시하고 교란행위를 합니다.

의식단계에서 초월하지 못하고 바른 마음에서 벗어나 간사함과 교활함을 지나 무지(無知)의 상태를 돌고 도는 행위에 대한 동양학적 마음분석

무지(無知) - 정지(正智) - 총지(聰智) - 영지(靈智)는 내면의 닦음을 통한 초월적 지평의 삶과 지혜의 터득단계이며,

무지(無知) - 정지(正智) - 간지(諫知) - 난지(亂知)는 정지(正智)에서 게으름으로 초월의 노력을 버리고 욕망에 집착하며, 간지(諫知) - 난지(亂知)의 단계로 벗어나 다시 무지(無知) - 정지(正智) - 간지(諫知) - 난지(亂知) - 무지(無知)의 그릇된 지식과 삶에 집착하는 상태입니다. 사이코패스 행위의 어리석은 삶은 이러한 단계에서 돌고 도는 삶입니다.

 

전체주의적 현상 분석

초월은 현실(의식계)의영역을 비현실(잠재의식계)을 넘어 초의식계(심층의식계 또는 무의식계)를 통하여 창조적이며 직관적인 지혜에 이르는 행위입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궁극으로 향하는 것을 닦음’, ‘수행’ ‘공부라고 하며 이 과정을 거쳐 내면의 완성에 이른 존재를 선비(프로펫서, 公人) 등으로 부릅니다. 또한 성자 등으로 불리며 소아(小我, ego)를 여의고 대아(大我, Idea, Super ego)를 드러내며 대평등과 대자유의 초월적 경지에 이른 이를 가리킵니다.

반면, 현실(의식계)의 영역에서 초현실의 꿈을 꾸지만 게으름과 욕망으로 비현실(잠재의식계)에 머물며, 소아를 여의고 대아를 획득하고 정법(正法)을 구현하는 자유인과 달리, 소아(小我, ego)를 확장하며 그 껍질들로 자신을 중무장하고 외부 의식 속에서 을 염원하는 빙의(憑依)행위를 통하여, 마법(魔法)을 쓰며 자기만의 콤플렉스인 무()의 경계에 자신을 가둔 채, 욕망하는 삶을 사는 존재로서 마법사, 무당, 트릭스터 등으로 고대와 현대 그리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불리워 온 존재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존재박식은 종적인 지배구조의 틀(사회, 콤플렉스)를 만들며 타인과의 관계를 지배의 배타적 방식으로 구성합니다.

동북아시아의 전통에는 예부터 전해오는 수행계(공부법)가 있습니다. 자아를 여의어 가며 초월의 단계에 이르렀을 대,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신의 혁명과 확장으로 현상하는 태양계와 같은 우주성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중궁(中宮)8 개의 집으로 형성하는 구궁(九宮)이라고 불렀고, 주역에서는 8괘로 상징합니다. (나를 다시 하는 동양학박현 글, 도서출판 바나리 간행 에서 옮김) 또한 일본에서는 이를 팔굉일우(八紘一宇)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수행학을 통하여 획득한 존재성은 참나를 연 된 사람이면서 내면의 불성(佛性) 또는 신성(神性)을 드러낸 존재입니다.

다음은 일본에서 전체주의의 모습에 대하여 만화형식으로 고발한 가리야 데쓰의 책 일본인과 천황에 수록된 글에서 옮기는 내용입니다.

팔굉일우(八紘一宇) 팔굉(八紘여덟 방향(八方)의 구석으로, 바꾸어 말하면 세계이고, ()는 지붕 또는 집을 뜻하니 팔굉일우는 세계를 한 집으로 한다는 뜻이다. 일본의 해외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사용한 슬로건으로, 일본서기3권 진무 천황의 신칙 중에 나라 안을 겸해서 도읍을 열고 팔굉을 덮어서 집을 만들라. 또한 좋지 않으리에 그 바탕이 있다.”

팔굉일우(八紘一宇)의 원래의 뜻은 마음 안에서 자신의 본래성인 중()이 성품을 드러내며 확장할 때, 8개의 집(또는 )으로 드러난다는 의미이며, 이는 한 사람이 진화해 오고 진화해 나갈 과거와 미래의 모든 기록이 들어있는 8개의 파일이 풀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모양은 태양을 도는 8개의 행성과 같은 모양으로 형성됨을 뜻합니다. 또한 나라 안을 겸해서 도읍을 열고 팔굉을 덮어서 집을 만들라. 또한 좋지 않으리의 의미는 마음 안에서 형성한 자신의 우주를 바깥의 세상에 재현(미메시스)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이 내용은 실제로는 자신의 내면혁명(초월)을 통하여 우주적 존재성을 드러내고, 세상에서 바른 행위를 통해 살아가는 공인(, 公人)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이 메이지 유신 때 세계 침략의 슬로건으로 활용한 것은 겉모양으로는 닮았지만 실제로는 자기 내면의 우주성인 신성(神性)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천황(天皇)이라는 외부의 가짜 신을 만들어 놓고 국민들이 추종하도록 함으로써, 정신적으로 기대는 최면 현상인 빙의(憑依)를 통하여 굴종하고, 타국과 타국민에 대하여 침략과 지배를 하려는, 전체주의(군국주의)를 정당화 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침략한 일본은 조선이나 대만과 같은 당시의 점령지에서 굴종을 강요하고, 인신을 구속하며 고문과 생체실험 등의 심각한 학대행위를 자행하였습니다. 또한 전쟁이 끝난 후에도 정상적인 전후 처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므로써, 당시 천황과 군벌들은 전후에도 권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이 정신은 일본의 사회와 사람들에게 내면화되어 정신을 바로하는 정의(正義)가 아니라 의식단계에서 서로에게 기대며 지배하거나 굴종하는 빙의(憑意, 憑依)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군국주의의 현상은 사회 속에서 상명하복의 지배와 복종관계를 만들며, 사유가 편중되어 편견과 현재성 없는 사유와 삶을 이룹니다. 또한 그에 따라 실재성 없는 가짜의 문화가 생겨나고, 개인이 소외되며 이에 따라 이지메와 같은 집단 따돌림이나 맹목적 복종이나 가해하는 폭력현상, 사이비 범죄, 극단적 문화현상 등의 특징을 이룹니다.

 

이러한 빙의 현상은 겉으로 보면 일상의 모양이라 쉽게 알 수 없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본성을 버리고 사는 정신적 껍데기인 좀비나 허깨비 등 타율에 따라 사는 사람과 사회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사는 사람이 사회에서 행사하는 반사회적 성격장애인 사이코패스가 되기도 하며 불특정 대상을 상대로 비인간적인 범죄를 저지릅니다. 다만 일상의 삶을 사는 보통의 사람 중에서 정신병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 일반 사회의 구조나 행동, 그리고 도구를 사용하며 보통의 의식을 활용함으로써 범죄의 현상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기공(氣功)이나 개인의 선천적 특이증상을 통하여 마약의 본래모양인 중독의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의식의 행위는 내면에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고, 뇌파(텔레파시) 등 초감각적 현상을 통하여 일상에서 보이지 않게 타인의 감각과 의식을 점유하는 최면(빙의, 憑依)행위로 이루는 식민지적 침략행위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욕망에 따라 그 사람의 기억을 점유하여 관계에 대한 이해와 교란으로 지배하며, 신경에 감응하여 교란하므로 감각과 의식까지 지배하는 본질적인 반사회적 성격장애(사이코패스) 행각을 합니다.

이 때 행하는 침해행위는 텔레파시로 신경에 감응하여 자행하므로 당하는 당사자가 잘 알지 못하거나 신체현상으로 드러나면 정신적 착란현상과 같거나 기억의 침해로 인한 기억상실 현상, 감각이상 및 신체장기의 비정상적 병증 등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질병으로만 인식하고 만성적인 치료행위를 해야 합니다. 단지 명상 등 내면수행을 통하여 자각력이 높은 경우 침해행위를 하는 사람의 모습(意體)을 보거나 소리로 들을 수 있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침해의 모양은 매우 집요하고 교활하게 나타나며, 신체를 이루는 의 통로인 신경(기경맥)을 이해하며 자행하기 때문에 남녀 노소와 시간과 장소조차 가리지 않으며, 행위의 정도는 세밀한 신체의 고문과 정신적 사육의 현상으로 드러나고, 직업 등 사회적 삶까지 교란함으로써 결국 타인에 매어 정신과 신체의 파멸로 이어지는 노예의 삶이며 상당수의 사람에게 죽음을 강요하여 살해의 행위로 이어집니다.

 

김영태의 행위 요약

타인에게 일방적으로 콤플렉스(강제사육 형태의 삶)를 만들어 강요합니다.

자신이 말하는 콤플렉스(강제 구조)는 수연(隨緣)이며 인연을 따른다는 숙명론적 과정이다 . 그러나 실제의 수연은 좋은 의미로 자연스러운 인연을 조화롭게 살며 집착하지 않고 해원한다는 의미입니다.

행위방식은 빙의(憑依)로 하는 사이비 조사선(祖師禪) 수행, 그러나 실제의 조사선(祖師禪)은 최면의식으로 하는 빙의가 아닙니다.

현상은 조절로 인한 강요된 질병(최면의식을 활용하여 타인의 신체에 흐르는 기를 조절할 수 있습니다.)

결과에서 중증질병과 죽음, 부정적인 관계의 교란현상으로 이어지며 개인과 가족이 순환적 마디(싸이클)을 이루고 재 반복하며 평생 겪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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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프로필사진 지성의 전당 안녕하세요.
    저는 지성의 전당 블로그와 카페를 운영하고 있는데,
    죽음에 대해 관심 있어 하시는 것 같아 댓글을 남겨 보았습니다.

    '불멸의 자각' 책을 추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인문학 도서인데, 한번 검토 부탁드립니다.
    '나는 누구인가?'와 죽음에 대한 책 중에서 가장 잘 나와 있습니다.
    아래는 책 내용 중 일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

    인식할 수가 있는 ‘태어난 존재’에 대한 구성요소에는, 물질 육체와 그 육체를 생동감 있게 유지시키는 생명력과 이를 도구화해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의식과 정신으로 나눠 볼 수가 있을 겁니다.

    ‘태어난 존재’ 즉 물질 육체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역할을 다한 도구처럼 분해되고 소멸되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육체를 유지시키던 생명력은 마치 외부 대기에 섞이듯이 근본 생명에 합일 과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육체와의 동일시와 비동일시 사이의 연결고리인 ‘의식’ 또한 소멸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추후에 보충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총체적 단절작용을 ‘죽음’으로 정의를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감각하고 지각하는 존재의 일부로서, 물질적인 부분은 결단코 동일한 육체로 환생할 수가 없으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의식’ 또한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신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간이자 전제조건으로서, 물질로서의 근본적 정체성, 즉 나타나고 사라짐의 작용에 의한 영향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타날 수도 없고, 사라질 수도 없으며, 태어날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는 불멸성으로서, 모든 환생의 영역 너머에 있으므로 어떠한 환생의 영향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신에 대한 부정할 수가 없는 사실이자 실체로서, ‘있는 그대로’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체에 의한 작용과정으로써 모든 창조와 소멸이 일어나는데, 누가 태어나고 누가 죽는다는 것입니까?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환생을 하고 누가 동일한 의식으로 윤회를 합니까?

    정신은 물질을 이루는 근간으로서의 의식조차 너머의 ‘본체’라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윤회의 영역 내에 있는 원인과 결과, 카르마, 운명이라는 개념 즉 모든 작용을 ‘본체’로부터 발현되고 비추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 자신을 태어난 ‘한 사람’, 즉 육신과의 동일성으로 비추어진 ‘지금의 나’로 여기며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로 착각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은 스스로 자율의지를 갖고서,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행동한다고 믿고 있지만 태어나고 늙어지고 병들어지고 고통 받고 죽어지는, 모든 일련의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느 것 하나 스스로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책임을 외면하기 위해 카르마라는 거짓된 원인과 결과를 받아들이며, 더 나아가 거짓된 환생을 받아들이며, 이 과정에서 도출되는 거짓된 속박, 즉 번뇌와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환영 속의 해탈을 꿈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는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거짓된 자기견해 속의 환생과 윤회는, 꿈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습니다. 더불어서 ‘누구이며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려면 반드시 비교 대상이 남아 있어야 하며, 대상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는 그 어떠한 자율성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는 꿈속의 꿈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뚜렷하고 명백하다 할지라도 ‘나뉨과 분리’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저는 ‘나’에 대한 그릇되고 거짓된 견해만을 바로잡았을 뿐입니다.


    www.uec2018.com
    2018.08.09 16:00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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