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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서문

히로 사치야와 함께하는 반야심경산책

 

 

찻집 수희재에서 책을 건네받았습니다.

, 히로 사치야

그의 책은 참 쉽습니다. 금방 읽히고 재미도 있지요. 그런데 번역자에게는 정말 어려운 책입니다. 그는 완벽한 구어체를 쓰고 있는 데다 자신의 생각에 빠져서 한 번 한 말을 또 하고 그 말을 또다시 강조하는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가 반야심경을 설명하겠다고 드니 한편으로는 호기심도 발동했지만 번역해야 하는 역자로서는 더럭 겁도 났습니다. 그러나 까다로운 문체에 담긴 그의 마음은 참 따뜻했습니다. 불교라는 것이 한없이 어렵기만 할뿐더러 머리 깎고 가사 입은 스님들의 전유물로만 여기던 사람들도 그럼, 이 기회에 한번 불교 좀더 알아볼까?’ 하는 마음을 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굳이 불교라는 제목을 붙이지 않아도 그의 글을 읽다보면 나의 현재가 부처님의 품안임을 새삼 느끼게 해줍니다.

반야심경은 우리 한국 불자들에게도 가장 친숙한 경입니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불자들이 반야심경의 내용을 잘 모릅니다. 역자도 한 번 반야심경을 강의해보겠노라고 시도했지만 스스로의 공부가 터무니없이 짧은 데다가 강의 듣는 이들 역시도 반야의 공도리를 받아들일 만큼 준비가 되지 않아서 양쪽이 진땀을 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반야심경하나를 놓고는, 어려운 내용이니까 알려고 들지 말고 그냥 무조건 외우자는 사람, 그래도 어떤 뜻이 담겨 있는지 알아나 보자며 산스크리트 원문까지 뒤적이며 읽어가는 사람의 두 부류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웬만한 사람이 아니라면 역시 내가 이해하기에는 역부족이야.’ 하며 한숨을 쉬고 경을 덮는 것이 현실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히로 사치야와 함께 반야심경산책길을 나선다면 안심해도 좋습니다. 저자는 우리에게 지레 겁을 먹는다면 죽을 때까지 반야심경의 한 구절도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갈지도 모른다고 넌지시 협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경 한 줄을 읽고서 세상을 찬찬히 살펴보면 횡단보도에서 스쳐 지나는 사람, 어제 지하철에서 읽은 책의 한 구절, 나를 뜨끔하게 비난하던 사람들의 손짓 등등에서 반야심경은 우럭우럭 내 가슴에 안겨온다는 새로운 사실도 일러줍니다.

불교를 알기 위해서는, 아니 진리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세속의 가치와 상식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머리와 가슴을 조금 유연하게 만들 필요가 있습니다. 역자는 이 글을 번역하면서 몇 번이나 아하, 그렇구나.’ 하며 무릎을 치곤 했습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세상 보는 시선을 조금만 달리하면 수십 년 놓치고 살았던 아름답고 소중한 의미들이 그대로 살아나리라는 것을, 이 책을 번역하며 새삼 느끼고 또 느꼈습니다.

그리고 번역을 끝내고 나서는 나는 이러이러해야 해’, ‘이러저러하면 안 돼라는 가치관 속에 자신과 세상을 꾸역꾸역 쓸어 담고 있는 수많은 이웃들과 반야심경을 함께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일었습니다.

이 세상의 잣대를 넘어서면 그곳에 피안이 있습니다.

피안에 가는 법? 피안행 기차표 파는 곳을 아는 사람은 이 세상에 유일하게 당신 자신일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히로 사치야가 들려주려던 메시지도 바로 이것 아닐까요.

 

200310

이미령 합장